생활

일·생활 균형, 기업 생존의 필수 조건: 유한양행 사례로 본 한국 사회의 진화

유한양행이 여성가족부로부터 5년 연속 ‘가족친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은 단순한 기업의 성과를 넘어, 한국 사회와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는 지표입니다. 이는 더 이상 복리후생의 차원을 넘어선 기업 경영의 핵심 전략이자,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우선, 일·생활 균형(Work-Life Balance, WLB)이 왜 오늘날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기업들에게 인재 확보 전쟁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과거처럼 무한한 노동력을 값싸게 활용할 수 없게 된 시대에,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고 이탈을 막는 것은 기업의 핵심 역량이 되었습니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워라밸’ 문화는 단순히 ‘쉬는 시간’을 넘어 ‘삶의 질’과 ‘개인의 성장’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이들은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삶과 행복을 희생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기업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가진 젊은 인재를 놓치고, 결국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한양행의 사례는 WLB가 기업에 실질적으로 어떤 이점을 가져다주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유연근무제, 육아휴직 및 가족돌봄휴가 지원, 사내 어린이집 운영, 직원 여가 및 건강 증진 프로그램 등은 단순히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 생산성 향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직원들은 일과 삶의 조화 속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고, 이는 업무 몰입도와 창의성 증진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이직률 감소는 숙련된 인재의 이탈을 막아 인력 재배치 및 신규 채용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나아가 가족친화적인 기업 이미지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ESG 경영의 ‘S’(Social)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투자 유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즉, WLB는 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습니다. 여성가족부의 ‘가족친화 인증’ 제도가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여전히 큽니다. 유한양행과 같은 선도 기업들이 모범을 보여주고 있지만, 인력과 재정 여건이 열악한 중소기업들은 WLB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힌 장시간 근로 문화와 ‘워커홀릭’을 미덕으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또한, 일방적인 정책 도입보다는 기업 문화와 구성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각 기업의 특성에 맞는 유연한 제도를 설계하고, 최고 경영진이 WLB의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아가, WLB의 개념은 이제 ‘가족친화’를 넘어 ‘개인의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 관리, 재정 상담, 커리어 개발 지원 등 직원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복지 개념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퇴근 후 삶’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 업무 시간 중에도 직원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리적 안정감과 업무 자율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직원은 회사에 대한 소속감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혁신을 주도할 수 있습니다. 경직된 위계질서를 벗어나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소통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 또한 WLB의 중요한 한 축입니다.

결론적으로, 유한양행의 5년 연속 가족친화 우수기업 선정은 한국 기업들에게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일·생활 균형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기업의 지속 가능성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사회 전체의 번영을 좌우할 핵심 가치입니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WLB 도입을 위한 현실적인 지원책을 강화하고, 기업들은 단기적 성과에 얽매이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재 중심의 경영 철학을 내재화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삶의 질’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일과 삶의 조화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다각적인 노력만이 우리가 직면한 인구 위기를 극복하고, 더욱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사회를 건설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 김철수 (cheolsu.kim@exam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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