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으로 치닫는 국회, 얇아지는 국정: ‘계엄 논란’ 1년의 정치 역학

서울 정치의 중심축이 합리적 타협에서 결별한 지 오래다. ‘윤 어게인’으로 정권 심판 프레임을 재가동하려는 야당, ‘믿고 지르는’ 단기 승부로 지지층 결속을 노리는 여당. 계엄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에 충격파를 던진 지 1년, 정치의 언어는 더욱 커지고 정책의 문장은 더 짧아졌다. 양측의 전략은 서로를 강화하는 거울상이다. 상대의 공격이 강해질수록 내 지지층은 응집하고, 응집은 더 과격한 동원을 부른다. 선거는 반복되는 국민투표가 되고, 국정은 다음 투표일까지 미뤄진다.

야당의 ‘윤 어게인’은 대의제의 내전화를 촉진한다. 정권 심판의 반복은 권력 감시라는 기능을 상시 총선 모드로 전환시킨다. 야당은 청문회·특검·국정조사로 정권의 약점을 증폭시키며 다음 선거의 프레임을 선점한다. 여당은 대통령 거부권, 헌법재판소 심판 청구, 검찰·감사 역학을 활용해 방어선을 구축한다. 한쪽은 의회 다수, 다른 쪽은 행정 권한을 무기화한다. 법률과 제도가 정쟁의 도구로 환원될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계엄 논란은 제도 신뢰의 균열을 상징했다. 실제 발동 여부를 떠나, 정치가 비상 상태를 상정하는 순간, 규범의 작동 범위는 좁아진다. 그 후 1년, 한국 정치는 비상 프레임을 상수로 내재화했다. 거친 언어는 규범을 소모하고, 규범의 약화는 다시 강한 언어를 부른다. 선순환의 역행이다.

정치가 극단화될수록 정책은 소형화된다. 작은 과제만 통과되고 큰 과제는 접힌다. 예산은 준예산 직전까지 흔들리고, 의료·연금·노동 3대 개혁은 표 계산 앞에서 멈춘다. 산업 전략도 파편화된다. 반도체·배터리·AI 등 전략 산업은 타이밍이 생명인데, 보조금·세제·규제 패키지가 정쟁에 걸려 타이밍을 잃는다. 한 번 놓친 타이밍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기술 패러다임은 정치적 타협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동아시아 변수는 정치의 지연 비용을 배가한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는 더 정교해지고, 일본은 경제안보 장치를 확장하며 공급망 코어를 자국 내로 끌어당긴다. 중국은 산업정책으로 자국 수요와 패러다임을 재편 중이다. 한국은 세 나라 사이에서 선택과 집중을 설계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정치의 끌림이 크면 외교·안보·산업의 일관성은 흔들린다. 외교는 메시지보다 숙제의 연속이다. 회담은 열렸지만, 그 이후 이행이 더 중요하다. 이행을 뒷받침할 정치적 합의가 없으면 성과는 기념사진에 머문다.

야당의 선거 전략은 분명하다. 물가·주거·노동 시장의 피로감, 검찰 권력의 과잉 인식, 사회적 안전망의 불안정성을 묶어 ‘변화’의 상징을 선점한다. 여당의 전략 역시 명확하다. 안보·경제 전선을 최대한 전진 배치하고, 규제 완화·세제 카드로 투자 심리를 자극하며 ‘성과’의 프레임을 강화한다. 문제는 둘 다 단기 성과에 걸려 있다는 점이다. 장기 구조개혁은 단기 표심에 불리하다. 결국 양측 모두 상대가 던진 단기 승부수에 응전하면서 장기 과제의 정치를 후순위로 미룬다.

제도 설계의 관점에서 보자. 한국 국회는 다수결과 소수견제의 이중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관행의 누적이 제도보다 강해진 지점이 있다. 필리버스터의 전술화, 패스트트랙의 상시화, 상임위 보이콧의 일상화다. 견제 수단이 본래 취지를 넘어 ‘상대의 시간을 빼앗는’ 무기가 되었을 때, 의회는 심의의 장이 아니라 지구전의 무대로 바뀐다. 이 지구전에서 국민은 관중이 아니라 비용을 부담하는 이해당사자다.

비교 기준은 일본과 중국이다. 일본은 당내 조정 장치가 제도화돼 있다. 파벌 정치의 그늘에도 불구하고, 내각과 관료, 경제단체의 조합이 정책의 연속성을 지탱한다. 스캔들이 내각을 흔들어도, 예산·안보·산업의 큰 틀은 유지된다. 중국은 반대로 중앙집중이 조정 비용을 최소화한다. 조정은 빠르지만, 투명성이 낮고 피드백 회로가 약하다. 한국은 두 모델 중 어느 쪽도 아니다. 빠르게 결정하고, 빨리 바꾸는 민첩성이 장점이지만, 정치가 과열되면 그 민첩성은 급선회로 변한다. 연속성이 없는 민첩성은 시장에 리스크다.

정치적 비용은 이미 수치로 드러난다. 정부 신뢰 지표는 경기 순환과 정치 갈등에 민감하게 흔들린다. 선거 참여는 60%대 중후반으로 높지만, 참여의 에너지가 정책 합의로 번지지 못한다. 높은 투표율이 높은 협치로 연결되지 않을 때, 정치의 대표성은 강하지만 통치력은 약해진다. 대표성의 과잉과 통치력의 결핍이 동시에 발생하는 역설이다.

외교·안보의 관점에서, 한중일 3국의 상호작용은 국내 정치의 안정성을 전제로 한다. 미·중 전략경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한·미·일 협력의 이행력은 한국 내부 합의의 폭에 좌우된다. 수출통제·공급망·데이터 이동·사이버 보안은 정쟁의 주제가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한국이 선택지를 넓히려면, 국내 정치가 의제 간 거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안보, 기후·에너지, 국방예산의 상호 보완적 타협이 필요하다.

해법은 감정의 정치를 설득의 정치로 되돌리는 기술적 장치에서 출발한다. 첫째, 초당적 ‘국정 가드레일 3종 세트’가 필요하다. 필수 예산의 자동 집행 규칙, 국가전략 산업의 5년 단위 초당적 위원회, 안보·외교 합의안의 사후평가 의무화다. 이 세 가지는 누가 집권하든 작동해야 한다. 둘째, 의회 절차의 비용을 재설계해야 한다. 필리버스터 남용에는 가중 비용, 상임위 무단 불참에는 의정활동 평가의 실질적 불이익을 부여하는 제도화가 필요하다. 셋째, 선거 전쟁의 독성 완화를 위해 허위정보 공동 대응 프로토콜을 정당 간 자율규범으로 채택해야 한다.

정당 내부도 바뀌어야 한다. 공천은 승자의 독점이 아니라 유권자 신뢰의 분배다. 개방형 경선과 지역정책 공약의 표준화를 통해, 전국 공약의 중앙집권을 완화해야 한다. 중간층의 탈락이 거대 양극화를 낳는다. 스윙보터가 설 자리를 잃으면 정치의 중립축이 붕괴한다. 한국 정치가 잃어버린 것은 ‘정중앙’이 아니라 ‘겹치는 부분’이다. 겹치는 부분이 있어야 타협이 가능하다.

경제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엔저·위안화 약세의 샌드위치, 홍해·말라카 해상 리스크, 반도체 업사이클의 변동성은 2025년의 상수다. 정책의 지연은 기업의 보수화를 부르고, 투자의 지연은 고용의 둔화를 낳는다. 결국 정치의 비용은 가계의 비용으로 전가된다. 국민은 정쟁의 관중이 아니라 청구서를 받는 청구인이다.

중일 변수는 여기서 다시 돌아온다. 일본은 경제안보 법제와 대만 유사시 시나리오를 촘촘히 업데이트 중이고, 중국은 내수부양과 첨단제조 패키지로 기술 곡선을 끌어올리고 있다. 한국은 이 둘 모두와 경쟁·협력의 복합 프레임을 유지해야 한다. 외교적 균형을 지지하는 내정의 균형이 없다면, 외교는 취약해진다. 한·중·일 다자 무대에서 한국이 ‘의제 설계자’로 남으려면, 국내 정치가 ‘타이밍과 연속성’이라는 외교의 두 축을 보장해야 한다.

결론은 단순하다. 정치의 언어를 줄이고 정책의 문장을 늘릴 것. 선거의 열기를 낮추고 국정의 온도를 높일 것. 야당은 심판을 넘는 대안을, 여당은 충성을 넘는 책임을 제시해야 한다. ‘계엄 논란’ 1년이 남긴 교훈은 위기 프레임의 중독성이다. 위기를 동원하는 정치가 아니라, 위기를 흡수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 정치는 속도를 자랑해 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과 지속성이다.

정치는 선택의 예술이다. 지금 한국 정치는 상대를 몰아붙이는 선택을 반복해 왔다. 다음 선택은 다르게 해야 한다. 타협은 굴복이 아니라 연합의 기술이며, 연합은 힘의 분산이 아니라 지속의 조건이다. 변화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일관성이다. 이 상식을 회복할 때, 한국 정치는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온다.

— 천유빈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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