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사제 도입, 서울 성동구의 실험과 그 국제적 파장

2025년 12월 2일, 서울특별시 성동구가 서울 내 자치구 최초로 노동이사를 공식 임명했다. 해당 결정은 지방정부의 공공기관 운영 방식에 실질적인 변화를 예고하며, 노동자의 경영 참여가 현대적 행정 시스템의 중요한 지향점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성동구의 노동이사 임명은 단순한 제도적 신설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방정부가 공공기관의 사내이사로 근로자를 임명함으로써, 의사결정과 경영과정에서 노동자의 이해와 공공적 관점을 직접 반영하는 길을 여는 장치다. 이는 2016년부터 점진적으로 확산된 노동이사제 논의, 그리고 최근 중앙정부 차원의 공공부문 혁신 압력 속에 현실화된 결과다. 서울시가 올해 초 산하 투자·출연기관에 노동이사제를 의무화하고 지방으로 확장된 점, 이는 중앙행정의 방향성과도 연결된다.

국제적으로 노동이사제는 프랑스, 독일, 북유럽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도입·운용된다. 예를 들어 독일의 공동결정제도(Mitbestimmung)는 1976년 이후 2,000명 이상 종업원을 둔 기업에서 노동자가 전체 이사회의 절반을 차지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프랑스의 경우 국영기업에 노동이사 참여가 오래전부터 확립됐다. 그러나 각 국가의 역사와 노사관계 역학에 따라 정책의 성격 및 사회적 기대, 실제 효용성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런 유럽형 모델은 노사의 힘의 균형,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 장기적 경영전략 형성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와, 반대로 의사결정의 경직성이나 책임소재 불명확 문제를 노출했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한국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은 노정관계의 역동성을 재조명하게 한다. 2022년 1월 개정된 지방공기업법과 공공기관 운영법에 근거해, 공공 자본 운용에서 ‘거버넌스’의 본질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노동계는 ‘재벌 이사회의 독점적 권한 견제’, ‘현장 중심 경영’을 기대하는 반면, 경영계 일부와 보수진영에서는 ‘경영 효율성 악화’와 ‘노사 갈등 확대’를 우려한다. 이 배경에는 한국의 지난 수십 년간 뿌리깊은 대립적 노사구조,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친 사회적 기억이 깔려 있다. 성동구의 정책이 전국적 추세로 확산될 수 있을지, 혹은 일회성 시범사업에 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서울의 대표적 도시재생·혁신 행정 실험장인 성동구의 선택이 타 지자체에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특히 글로벌 경기침체 및 노동시장 변화가 극심한 시기, 노동이사제는 투명한 경영과 사회적 연대의 균형점을 재정립하려는 흐름과 결을 같이 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공고히 자리잡는 2020년대, 노동자 참여는 사회적 가치의 구현, 공공조직의 신뢰도 제고, 장기적 성장동력 확보 측면에서 중요하게 부상하고 있다. 성동구의 노동이사제 실험은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와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그러나 해당 제도의 안착 조건은 만만찮다. 실제 경영참여권이 형식화되지 않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이사가 경영 전문성과 현장 경험을 갖추고 이사회 내에서 정당한 목소리를 낼 시스템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 또한 경영진-노동자-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신뢰와 설득, 제도적 보완 노력 없이는 오히려 조직 내 갈등을 증폭시킬 위험성도 존재한다. 유럽에서 확인된 사례들이 시사하는 핵심은 ‘참여의 진정성’과 ‘투명한 규범’의 확립이 동반될 때 비로소 긍정적 효과가 실현된다는 점이다.

더불어, 급속한 인구구조 변화, 고령화, 기술혁신에 따른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각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사제의 현실적 의미를 따질 필요가 있다. 노동이사제는 단순한 노사 가교가 아니라 사회적 대화와 통합의 새로운 실험이자, 공공부문 신뢰 회복을 위한 길고 험난한 여정임이 틀림없다. 가시적인 성과와 더불어, 그 이면에 잠재한 사회 갈등, 거버넌스의 핵심 원칙 재점검이 필수적이다.

성동구의 용감한 결단은 서울시 및 타 지방정부, 나아가 전국 공공기관의 고유한 조직 현실과 노사관계 발전 양상에 어떤 변화를 촉진할지 촉각이 곤두서 있다. 한국이 국제 질서 속에서 노동과 경영, 공공과 민간 간에 힘의 균형을 어떻게 재편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과정이 향후 글로벌 스탠더드와 어떤 접점을 세울지 면밀한 주시가 필요하다. 공공의 미래는 단일 방정식으로 해석할 수 없다. 힘의 동역학, 역사적 맥락, 사회적 필요라는 세 동력이 얽히는 가운데, 성동구의 노동이사제가 한국 행정과 사회, 나아가 글로벌 거버넌스 패러다임에 어떤 균열 혹은 연결고리를 남길지 주목해야 한다.

— 오지훈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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