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계엄 프레임’, 정치는 벼랑 끝에 섰다
이재명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정적을 향해 ‘계엄을 위한 전쟁 유도 세력’이라는, 헌정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규정을 내렸다. 이는 단순한 정치 공세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의 금도를 넘은, 위험천만한 선언이다.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이 발언은 여의도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정치적 수사를 넘어, 사실상 반대 세력을 ‘반국가단체’로 지목한 것이기 때문이다.
목표는 명확하다.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난맥상을 일거에 돌파하려는 것이다. ‘애국 대 이적’이라는 선명한 프레임을 통해 국정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겠다는 의도다. 현재 이재명 정부는 다수 야당의 견제와 각종 특검 요구, 지지부진한 경제지표 등 사면초가에 놓여있다. 이 상황을 타개할 카드로 ‘안보’와 ‘내부의 적’을 꺼내든 셈이다. 이는 권력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보이는 가장 전형적인 행태다.
대통령의 발언은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적 행위다. 발언의 진위나 증거 유무는 이 프레임 전쟁에서 부차적이다. 중요한 것은 ‘전쟁’, ‘계엄’과 같은 극단적 언어를 통해 의제를 선점하는 것이다. 이로써 반대 세력의 모든 합리적 비판과 저항을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이적행위’로 몰아갈 동력을 얻는다. 지지층을 향해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대통령의 외로운 싸움’이라는 서사를 구축한다. 강력한 팬덤을 기반으로 한 이재명식 정치의 정수다.
그러나 이 프레임은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한 양날의 검이다. 핵심 지지층을 광적으로 결집시킬 수는 있겠으나, 대다수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층의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다. 정치적 반대자를 ‘악마화’하는 전략은 토론과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작동 원리를 파괴한다. 대통령 스스로가 협치의 공간을 없애고 극한 대립의 전장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이는 국정 운영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야권은 즉각 ‘독재적 발상’, ‘국민 분열 책동’이라며 총공세에 나섰다. 이제 정치의 장은 정책 대결의 장이 아니다. ‘누가 대한민국을 위협하는가’를 묻는, 존재론적 투쟁의 장으로 변질됐다. 야권은 이재명 대통령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진짜 위험 세력’이라는 역프레임으로 맞설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두 개의 거대한 프레임이 충돌하는 내전 상태에 돌입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다음 수순이다. 대통령이 직접 ‘내부의 적’을 선포한 이상, 권력기관들은 움직일 명분을 얻는다. 검찰, 경찰, 국정원 등 사정기관이 야권을 향해 칼날을 겨눌 가능성이 농후하다. 공안 정국이 도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정치적 상상력이 현실의 위협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다. 이 시나리오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를 의미한다.
권력의 속성은 위기에 몰릴수록 극단성을 띤다. 이 대통령의 초강수는 역설적으로 현 권력의 불안정성을 증명한다. 국정 동력을 상실한 대통령이 기댈 곳은 강성 지지층의 결집과 반대 세력에 대한 사법적 압박뿐이라는 것을 자인한 꼴이다. 이는 국정 운영의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깊은 위기감의 발로다.
결론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계엄’ 발언은 대한민국 정치를 돌이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했다.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오직 ‘제거’와 ‘척결’의 논리만이 남았다. 이 위험한 도박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승리를 안겨줄지, 아니면 정권 전체를 삼키는 부메랑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나도 막대하다는 사실이다. 정치는 실종됐고, 전쟁만 남았다.
— 윤태현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