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혹한기, 성장 동력 위협… 주식시장 활황 뒤 숨겨진 현실
주식시장이 뜨겁다.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연일 상승세다. 겉으로 보기에는 활황기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싸늘한 현실이 존재한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여전히 ‘벤처 보릿고개’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기 변동을 넘어선다. 우리 경제의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한 심각한 경고다. 현 정부의 혁신 성장 기조가 실제 시장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냉철히 분석해야 할 시점이다.
투자 시장의 심각한 경색이 확인된다. 2023년 3분기 벤처투자액은 전년 동기 대비 29.5% 급감했다. 연간 누적으로도 27.6% 줄었다. 신규 투자 감소는 물론, 기존 스타트업들도 자금난에 허덕인다. 밸류에이션 하락은 불가피한 흐름이다. 한때 유니콘을 꿈꾸던 기업들도 인력 감축과 사업 재편을 강요받는다. 특히 초기 단계인 시드 및 시리즈A 투자가 급감하는 현상은 우려를 넘어선다. 벤처 생태계의 허리 부분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다. 새로운 혁신 기업의 탄생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이대로는 우리 산업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이 혹한기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첫째, 글로벌 고금리 기조의 장기화가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전 세계적으로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 벤처 투자는 본질적으로 고위험 영역이다. 금리가 오르면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투자자들은 더욱 신중해진다. 투자금 회수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졌다. 둘째, 투자 패러다임이 변화했다. 과거에는 ‘성장성’에 초점을 맞춘 투자가 지배적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투자자들은 ‘수익성’과 ‘내재 가치’를 최우선으로 본다. 옥석 가리기가 더욱 냉혹해졌다.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과 명확한 수익 창출 방안이 없는 기업은 외면받는다. 이는 시장의 합리적 선택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시장에서 혁신을 추구하는 스타트업에게는 더욱 가혹한 조건이 되었다. 셋째, 국내 정책의 실효성 부족도 지적된다. 정부는 ‘벤처투자 촉진법’ 등을 통해 지원 의지를 보여왔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효과는 미미하다. 정부 주도의 정책적 지원은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과도한 간섭은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민간 자율에 기반한 투자 생태계 조성이 핵심이다. 단기적 부양책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 원리를 살리는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넷째, 회수 시장 부진이 심각하다. IPO 시장은 여전히 문턱이 높다. 상장 자체가 쉽지 않다. M&A 시장의 활성화는 더디다.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통로가 막히면, 신규 투자는 자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건강한 벤처 생태계는 투자-성장-회수의 선순환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 이 핵심 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이 ‘벤처 보릿고개’는 단순한 경제 현상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과 직결된 국가적 어젠다다. 현재 정치권의 대응은 안일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정부는 ‘혁신 성장’을 중요한 국정 과제로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 정책 집행에서는 구호에 그치는 경향이 짙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 간의 유기적인 협조 체제는 제대로 작동하는가? 각 부처가 각자의 칸막이 안에서 단편적인 대책만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 권력 지형상 컨트롤 타워의 부재가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국회는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현재 정쟁에 매몰되어 있다. 미래 세대의 일자리 창출,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라는 거시적 관점은 뒷전이다. 벤처 생태계 활성화는 여야를 막론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초당적 협력이 요구된다. 이대로 간다면 청년들의 도전 기회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혁신적 아이디어가 시장에 나올 기회를 잃게 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 약화, 그리고 더 나아가 경제 성장률 저하로 이어진다. 단순히 특정 기업의 흥망성쇠 문제가 아니다. 국가 전체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해결책은 명확하다. 정부는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자율적인 혁신과 투자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 첫째,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수적이다. 경직된 규제는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는다. 과감한 규제 샌드박스 확대와 불필요한 행정 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 혁신적인 시도가 좌절되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 둘째, 세금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 벤처 투자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을 확대하여 민간 자금이 벤처 시장으로 흘러들게 해야 한다. 특히 엔젤 투자 및 초기 스타트업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는 더욱 강화해야 한다. 셋째, 회수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M&A 활성화를 위한 세제 지원 및 법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합병이 쉽게 이루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통해 투자자는 안정적인 회수 기회를 얻고, 스타트업은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코넥스 시장 등 제2금융시장의 기능 강화도 필수적이다. 넷째, 연기금 역할 확대다. 국민연금 등 국내 주요 연기금의 벤처 투자 비중 확대는 안정적인 자금 공급원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역시 시장 원리를 고려한 투자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확산이다. 스타트업의 실패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실패한 기업가들이 재도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실패가 곧 끝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분별한 재정 투입은 지양해야 한다. 한정된 재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민간 투자를 유인하는 마중물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중도 보수의 핵심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벤처 혹한기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정치권은 현실을 직시하고, 정략적 접근을 멈춰야 한다. 시장의 활력을 되살리고, 혁신의 씨앗을 키워낼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 윤태현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