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보도자료가 말하지 않은 것들: 법과 기술의 경계에서 신뢰를 설계하는 법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보도자료는 법 규정을 반복하는 문건이 아니라, 선거 현장에서의 실제 행동을 바꾸는 신호다. 문구 한 줄의 해석이 게시물 삭제와 후보자 고발 사이를 갈라놓고, 플랫폼 알고리즘과 수사 관행을 움직인다. 그래서 우리는 보도자료의 문장 사이사이에 숨은 기준과 결정을 읽어야 한다. 무엇을 단속하고 무엇을 안내하며 무엇을 침묵하는지가, 곧 이번 선거의 위험지형을 그리기 때문이다.
핵심은 공직선거법의 고전적 삼각지대—사전선거운동 금지, 허위사실공표죄, 비방죄—가 디지털 환경에서 어떻게 재해석되는가다.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상시 선거운동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며 표현의 자유의 무게추를 올려놓았다. 대법원은 허위사실공표와 비방의 범위를 좁혀 ‘구체적 사실’과 ‘고의’라는 문턱을 세웠다. 그럼에도 실무에서는 신고-삭제-수사의 속도전이 벌어진다. 보도자료가 이러한 속도의 정당성을 어떤 절차와 지표로 뒷받침하는지, 이것이 첫 번째 관전 포인트다. 임의적 차단과 과잉억제를 피하는 최소침해 원칙, 그리고 사후 구제 경로를 명시했는지 여부는, 표현의 자유와 공정의 균형을 가르는 분수령이 된다.
두 번째는 생성형 AI와 심리전의 결합이다. 딥페이크는 ‘사실성의 착시’와 ‘유통의 속도’를 결합해 법의 요건을 교란한다. 현실의 수사 단계에서는 원본 탐지, 합성 흔적 분석, 배포망 추적이라는 디지털 포렌식 3단계가 핵심이다. 선관위가 플랫폼과 체결한 협력체계가 단순 신고창구를 넘어, 신속 라우팅과 증거보존명령에 준하는 안전장치를 갖췄는지 확인해야 한다. 삭제를 서두를수록 원본과 로그는 사라진다. 보도자료가 ‘차단 시간’만을 자랑한다면 절반짜리 대책이다. 증거를 남기고, 출처를 특정하며, 반복범을 봉쇄하는 ‘사후처리 설계’까지 있어야 완성된다.
세 번째는 유권해석의 일관성이다. 보도자료는 법령이 아니라 행정 해석이지만, 현장에서는 준규범처럼 작동한다. 문제는 같은 조항이 후보·시민·언론·플랫폼에 다르게 적용될 때 생기는 ‘선별적 억제 효과’다. 사전선거운동의 범위를 넓게 보면서도, 공익적 검증 보도나 시민 감시 활동에는 좁게 보는 이중 잣대가 개입하면 신뢰는 급전직하한다. 일관성은 기록에서 나온다. 회의록 공개, 기준표 제시, 사례 데이터 축적이 뒤따를 때만 선관위의 중립성이 설득력을 얻는다. 보도자료가 단속 건수와 삭제량을 제시했다면, 동시에 ‘기각’과 ‘불문’ 사례, 재심 통계, 오판 복구 절차도 병기했는지 묻는다.
네 번째는 투표 관리의 미시적 리스크다. 사전투표함 이송, 봉인지 관리, CCTV 사각지대, 개표장 출입통제 같은 ‘물리적 절차’는 음모론이 아니라 운영 리스크의 언어로 다뤄져야 한다. 절차는 설득을 위해 존재한다. 외부 참관과 실시간 기록, 무작위 표본검증, 실험실이 아닌 ‘현장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공개가 필요하다. 블록체인 같은 유행어보다 중요한 건 체계적 이중 확인과 범용 장비의 표준화다. 보도자료가 과장 없는 숫자와 체크리스트를 들고 나왔다면 반은 성공이다. 문제를 부인하지 않고 오차를 인정하며, 그 오차를 관리하는 공학적 태도가 신뢰를 만든다.
다섯 번째는 수사와의 거리다. 선거범죄 수사에서 ‘고발 독점’과 ‘표적성’ 논란은 오래됐다. 선관위가 어떤 사건을 수사기관에 넘기고, 어떤 사안에서 행정지도와 자율시정을 선택하는지의 분기점은 정치적 파장과 직결된다. 비례성과 필요성 원칙에 따른 내부 기준을 문서화하고, 고발 전 당사자 청문과 정정보도·해명 기회를 부여하는 단계적 절차를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보도자료가 이 과정을 단계도처럼 명확히 제시했다면, 이는 ‘사실상 기소’에 준하는 고발의 무게를 자각한 신호다.
기술 영역에서는 세부 설계가 관건이다. 플랫폼과의 협력은 선언이 아니라 API와 SLA의 문제다. 신고 채널의 인증, 대량 유사 게시물의 군집 탐지, 정치광고 라이브러리의 공개 범위, 봇 행태의 지표 설계가 실무를 갈라놓는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자동화가 오판할 경우의 이의제기 루프와 복원 시간(rollback time)을 수치로 약속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정보의 진실성 보호는 표의 자유와 충돌할 수밖에 없고, 이 충돌을 완화하는 방법은 정교한 절차의 투명화뿐이다.
법률 측면에서 이번 선거의 쟁점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사전선거운동 판단에 있어 ‘정치적 의사표시’와 ‘특정 후보의 당선·낙선 목적’의 구별 기준을 어떤 외형 사실로 입증할 것인가. 둘째, 허위사실공표죄에서 ‘사실’과 ‘의견’의 경계—특히 통계와 그래픽, 요약본 등 2차 표현물에 대한 취급. 셋째, 비방죄의 구성요건 중 ‘공익성’과 ‘상당성’ 평가에서 공인 기준을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 판례는 표현의 자유에 우호적이지만, 선거는 시간이 유한한 특수 절차다. 신속성과 신중성의 균형을 정하는 세부기준을 선관위가 얼마나 명시하는지에 따라, 사후 소송에서의 방어 가능성이 달라진다.
조용한 위험은 데이터다. 온라인 정치광고의 마이크로타기팅은 개인정보 처리와 직결된다. 플랫폼이 제공하는 맞춤도구를 활용한 캠프의 타깃 설정이 공직선거법상 비용보고와 표현 규제의 사각지대를 만든다. 선관위가 요구해야 할 것은 ‘광고 집행 메타데이터’의 표준 공개와 감사 접근권이다. 유권자의 선택 자유는 광고 노출의 투명성에서 출발한다. 광고 라이브러리의 키워드·타깃 기준 공개, 예산 및 발주처 추적 가능성, 취소·수정 이력까지 포함된 로그가 필수다.
해외 유통과 국외 IP의 문제는 관할권의 함정이다. 삭제 요청과 차단 명령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국제 공조 채널과 국내 대리인 제도의 실사용률을 끌어올려야 한다. 동시에 국외 게시물의 국내 뷰 제한이 표현 자유를 과잉 침해하지 않도록, 지리적 제한의 범위·기간·대상 선정 기준을 기술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명문화해야 한다. 이 또한 보도자료가 제시해야 할 ‘기술적 집행의 헌법 적합성’의 부분이다.
결국 보도자료가 말해야 하는 것은 의지나 비전이 아니다. 실패했을 때 무엇이 공개되고, 누가 책임지며, 어떤 속도로 복구되는가라는 운영의 언어다. 신뢰는 성공 사례가 아니라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서 생긴다. 선관위가 제시해야 할 체크리스트는 명확하다. 1) 표현 제한의 최소침해 검증과 이의제기 루프 공개, 2) 플랫폼·언론·시민단체와의 다자 실무 테이블 상시화, 3) 투표·개표 절차의 무작위 감사와 실시간 데이터 공개, 4) 고발·이첩 판단 매뉴얼과 사전청문 절차, 5) 선거 종료 후 독립평가와 권고 이행 점검. 이 다섯 가지가 구체적 수치와 기한으로 적힌 보도자료라면, 이번 선거의 위험은 크게 낮아진다.
선거는 제로 에러의 프로젝트가 아니다. 중요하지 않은 실수가 없을 뿐이다. 법과 기술은 결국 절차라는 동일한 언어로 만난다. 선관위가 그 언어를 정교하게 구사할수록, 정쟁의 소음은 줄고 시민의 신뢰는 높아진다. 보도자료는 그 첫 문장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약속의 시계와 점검의 통계다. — 서지현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