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채용비리 재발 방지법 통과…독립성과 책임성의 경계에서
국가의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 최소한의 신뢰를 잃으면,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 문화는 흔들리고 민주주의의 운영 비용은 급격히 높아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친인척 특혜 의혹에서 촉발된 불신은 채용 절차의 폐쇄성, 내부 견제의 부재, 외부 감사의 한계를 한꺼번에 드러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른바 ‘선관위 채용비리 재발 방지법’은 바로 그 균열을 봉합하겠다는 입법적 답이다. 다만 법률 문구가 약속하는 효과는 집행의 밀도와 사후 통제로만 증명된다.
핵심은 세 갈래다. 첫째, 채용의 전 과정을 공개·기록·검증 가능한 체계로 전환하는 절차적 투명성 강화다. 공고-서류-필기-면접의 각 단계에서 평가기준과 배점, 심사위원 구성, 회피·제척 사유를 의무 기록하고, 외부위원 참여를 일정 비율 이상으로 고정한다. 심사자료와 로그 기록은 감사·사법 절차에 대비해 장기간 보존된다. 둘째, 이해충돌과 친인척 채용 금지의 실효화를 위한 규율이다. 일정 범위 내 친인척(통상 4촌 이내로 해석되는 범위)과의 업무연관성 여부를 불문하고 채용 개입을 금지하고, 내부 추천·전보·파견 과정까지 확장 적용한다. 셋째, 제재 체계의 상향이다. 부정 채용이 확정되면 임용 취소를 원칙으로 하고, 관련자에 대해 형사처벌과 과태료, 징계 병과가 가능하도록 했다. 위반 행위를 조직적·반복적으로 지시한 지휘부에 대한 관리책임을 명문화한 점도 주목된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감사와 감독의 범위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정치적 중립성이 존재 이유다. 그러나 독립성은 통제의 부재가 아니라 통제의 분립을 뜻한다. 이번 개정에는 외부감사의 상시화, 감사원의 정기감사 또는 동등한 수준의 독립 외부감사 근거, 국회 보고의무 강화 등 다양한 형태가 조합돼 있다. 취지는 분명하다. 선거업무의 판단 영역에는 손대지 않되, 일반 행정과 인사·예산의 영역은 타 기관과 동일한 수준의 사후 검증을 받게 하자는 것이다. 야권 일각은 감사원이 행정부 소속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간섭의 우회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반대로 여권은 채용·계약 같은 일반 행정행위는 독립성의 보호범위 밖에 있다는 논리를 편다. 헌법재판과 행정소송의 쟁점이 될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최소한 이번 법은 독립성(선거 관리의 자율성)과 책임성(인사·예산의 투명성)을 기능별로 분리하려는 설계를 택했다.
부패 방지 기술적 장치도 눈에 띈다. 가족관계·인사 연계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이해충돌 자동탐지, 면접위원 무작위 배정과 평가 분산, 채용평가 전 과정의 전자서명·타임스탬핑 등 이른바 ‘감사 추적성(auditability)’을 높이는 조항과 지침이 함께 제시됐다. 특히 계약직·파견·용역 인력까지 포섭하는 조항은 비정규 영역을 우회로로 이용하던 관행을 차단할 최소한의 방책이다. 개인정보 보호와의 긴장도 있다. 친인척 확인을 위한 가족관계 수집은 목적 제한·최소 수집·파기 규칙과 세트로 움직여야 한다.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통제의 설계다. 기록은 위변조가 불가능해야 하고, 예외는 좁아야 하며, 점검은 독립적이어야 한다.
법률의 실효성은 처벌의 수위가 아니라 적발의 확률에서 나온다. 내부 고발의 안전망이 왜 중요한가. 과거 유사 사건에서 핵심 단서는 내부자 진술과 문서였다. 이번 개정으로 공익신고자 보호의 적용 범위가 확장되고, 책임감면·보상 근거가 보강됐다면, 그것은 적발 확률을 올리는 직접적 장치다. 단, 신고채널의 독립성, 2차 피해 방지, 비실명 제보의 조사 기준을 구체화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다시 무용지물이 된다. 제보가 묻히는 통로는 늘 ‘형식상 설치’에서 시작됐다.
국제 비교는 우리의 선택이 과도하지도, 과소하지도 않음을 시사한다. 영국 선거위원회(Electoral Commission)는 국가감사원(NAO)의 재정감사를 정례화하고, 미국 연방선거위원회(FEC)는 정부감사원(GAO)의 성과감사를 받는다. 양국 모두 선거업무의 판단에는 손대지 않되, 인사·예산·계약의 영역은 일반 행정기관과 동등한 통제를 받는다. 독립기관이라도 책임 회피의 방패막이가 될 수 없다는 공통의 결론이다.
정치적 파장은 단기적으로 두 갈래로 흐를 것이다. 여권은 ‘총선·대선을 앞둔 신뢰회복’의 성과를, 야권은 ‘감사의 칼날이 선거관리의 본질로 번지지 않는 장치’의 미비를 각각 부각할 것이다. 실제 관건은 법 해석과 집행의 초동 국면에 달려 있다. 시행 6개월 내 전수조사, 외부위원 풀 재정비, 기존 채용의 사후 검증 범위와 방식, 위법 소지 발견 시 임용 취소와 구제 절차의 경합 등, 기관이 매일 부딪칠 선택지가 빽빽하다. 일괄 취소는 법치가 아니라 정치가 되고, 솜방망이는 개정의 취지를 무너뜨린다. 사안별로 사실을 가려낸 뒤,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고, 동일 사안에는 동일한 제재를 적용하는 것이 정답이다.
사법 리스크도 예상된다. 징계·임용 취소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이 줄을 이을 공산이 크다. 재판부는 채용 단계별 하자와 결과 사이의 인과를 엄격히 본다. 서류 평가표의 부존재, 면접 점수의 비약적 변동, 회피·제척 위반과 같은 절차 하자가 중대·명백할수록 취소 처분의 적법성은 높아진다. 따라서 기관은 기록을 남기고, 보관하고, 요구에 신속히 제출해야 한다. 법정에서 증거가 빈약하면 정의감은 무력하다. 양형과 별개로 형사책임을 묻는 사건에서는 범의(의도) 입증이 관건이지만, 최근 법원은 조직적·반복적 위반, 지휘부 개입 정황에 엄격하다.
입법은 출발점일 뿐이다. 다음 단계는 실행 로드맵이다. 첫째, 90일 내 준수체계 구축: 채용 표준 매뉴얼 통합, 이해충돌 자동탐지 시스템 적용, 외부위원 풀의 자격·회피 규칙 공표. 둘째, 상시 데이터 공개: 채용 공고·지원·경쟁률·합격자 통계와 심사 기준 요약의 정기 공개. 통계는 개인정보를 비식별화하되, 외부 검증이 가능한 수준의 세분성을 갖춰야 한다. 셋째, 제3자 점검: 감사원 또는 동등한 독립감사 주기의 명문화와 샘플링 감사의 무작위성 보장. 넷째, 용역·파견까지 포함한 ‘그림자 인력’ 전수조사와 계약조항 표준화. 다섯째, 고위직 회전문 통제: 퇴직자 추천·영향력 행사 금지의 실증 모니터링.
이 법의 진짜 성패는 선관위가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느냐에 달렸다. 내부의 관행을 부정하고, 불편한 기록을 남기고, 외부의 시선을 받아들이는 일은 조직에게 쉽지 않다. 그러나 선거의 공정성은 결과의 공정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절차의 공정성, 특히 채용과 인사의 공정성은 기관 전체의 신뢰를 지탱하는 기초다. 선거 결과를 심판하는 법원처럼,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도 ‘보여줄 수 있는 정당성’을 구축해야 한다. 그 시작이 오늘 통과된 법이라면, 그 완성은 내일부터 시작될 집행과 공개, 그리고 실패했을 때의 단호한 책임에서 온다.
유권자의 신뢰는 구호로 회복되지 않는다. 숫자와 기록, 독립적 점검, 일관된 제재가 신뢰를 만든다. 수사와 재판은 마지막 안전장치다. 가장 효율적인 반부패는 ‘발생하지 않게 만드는 시스템’이며, 가장 비싼 반부패는 ‘사건 터진 뒤의 수습’이다. 이번 입법이 전자가 되기를, 그리고 선관위가 스스로의 독립을 스스로의 투명성으로 증명하길 바란다.
— 서지현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