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5년 만의 법정시한 통과… 협치의 신호탄일까, 잠깐의 휴전일까

국가 예산의 결정은 그 해 정치 구도와 사회적 흐름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2025년도 예산안 727조9000억원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가 예산안을 법정시한(12월 2일) 내 처리한 것은 2019년 이후 5년 만이다. 예산안은 매년 여야의 극한 대립과 진통 끝에 연말 막판에서야 가까스로 통과되던 ‘관행’을 벗어나, 오랜만에 제 때 통과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예산안 통과의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최근 여야 모두 이슈 선점과 민심 대응에 보다 집중할 수밖에 없는 정치지형의 변화다. 윤석열 정부 3년 차에 접어든 국민의힘은 집권 중반기 국정 동력을 유지해야 하고, 더불어민주당은 2024 총선을 겨냥해 ‘발목 잡기’ 프레임을 피해야 한다는 전략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앞서 민주당은 복지‧서민 예산 증액을 요구했고, 국민의힘은 정부 원안 준수를 고수했으나, 소득하위 70% 난방비 지원 등 일부 쟁점 예산에서 절충점을 찾으며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 이번 예산 협의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단순한 ‘주고받기’식 거래를 넘어 재정건전성 논의가 중심 의제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이 2.8%로, 20년 만에 최저치에 그친 점은 정부의 재정 긴축 기조가 강력하게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국제 신용평가사 및 국내 전문가들도 최근 한국의 국가채무 증가와 관련해 우려를 표했는데, 이번 감액 중심의 예산 편성은 이에 대한 일정 부분 답변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반면 주요 복지 예산과 지역 투자 사업, 민생 긴급지원 항목이 일부 증액 내지 회복된 점은, 여야 모두 취약계층 보호와 지역 민심 달래기를 외면할 수 없었음을 확인케 한다. 시선을 모으는 것은 주요 쟁점 예산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여야의 전략 변화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주장한 에너지바우처(난방비 지원) 및 공공일자리 확대 등의 명분 일부를 수용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부동산 종합부동산세 감면 등 여당의 경제 활성화 조치에 대해 덜 공격적으로 대응했다. 양당 모두 내년 4월 총선이라는 초대형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재정 운용과 민심 이슈를 극한 대결이 아닌 ‘절충의 정무적 무대’로 옮긴 셈이다. 실제로 민주당 박정 예결위 간사는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예산은 줄이고, 서민에 필요한 예산은 늘린 것이 이번 합의의 핵심”이라 자평했다. 하지만 전망은 단순하지 않다. 법정시한 내 예산안 통과가 협치로 곧장 이어질지, 혹은 선택적 ‘휴전’에 그칠지는 미지수다. KBS, 경향신문, 연합뉴스 등 복수 언론에 따르면 여야는 3대 쟁점 현안—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 방송법 개정, ‘쌀값보장법’—에선 여전히 뚜렷한 이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부-여당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법안, 그리고 야당이 일관되게 추진 중인 정책들이 향후 정국 경색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사회 각계는 이번 예산안이 제 때 통과된 점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미래 성장 산업 투자와 사회안전망 확충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재정 집행이 실제로 될지 주목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경영계에선 각각 “복지·민생 우선”과 “재정건전성 강화, 규제 완화”라는 방향에서 반응이 엇갈렸다. 이번 예산 타협 사례는 양당이 민생 의제를 전면에 두고 전략적 절충에 나선 점, 재정 건전성 논의가 정치적으로 실천되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총선을 앞두고 공방보다는 최소한의 합의 국면을 택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는 구조적 합의의 신호탄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정치 일정과 복합적 민심을 겨냥한 한시적 휴전 또는 유동적 적응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2024년 총선 전까지, 그리고 이후 국회 권력 구도가 재편되는 시점까지, 여야의 정책 대립과 예산정책 공방은 더욱 치열한 양상을 띨 전망이다. — 최은정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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