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AI 외교 강화, 한국 정치권의 전략 부재가 위험하다

일본이 전 세계 150여 개 재외공관에 ‘AI 정책담당관’을 신설한다는 발표는 단순한 외교 인력 확충을 넘어선다. 이는 인공지능(AI)이 미래 국가 경쟁력과 글로벌 패권을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는 일본의 명확한 인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권력 지형을 구축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넘어 전 지구적 차원에서 AI 기술과 그로 인한 규범, 시장을 선점하려는 일본의 야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일본이 AI를 단순한 산업 기술이 아닌, 국가 안보, 경제, 외교의 통합적 자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AI 기술 표준화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국제사회의 AI 거버넌스 틀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자 한다. 특히 ‘개발도상국 협력 확대’는 고도의 전략적 의미를 내포한다. AI 기술 격차와 디지털 불평등 심화에 대한 전 세계적 우려가 커지는 시점에서, 일본은 개발도상국에 AI 인프라 구축과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이들 국가와의 유대 관계를 강화하려 한다. 이는 미래 시장을 확보하고 잠재적 동맹을 구축하며, 국제기구 내에서의 지지 기반을 확대하는 다면적 접근이다.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 전략과 유사하게, 일본은 ‘AI 실크로드’를 통해 정보와 영향력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려는 정치 프레임을 구축 중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이 단순한 경제 대국을 넘어, AI 시대의 ‘책임 있는 기술 선도 국가’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본의 이러한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AI 외교 전략은 한국의 정치권과 외교 당국에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대한민국은 과연 AI가 주도하는 미래 국제 질서 속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려 하는가? 국내 정치권은 여전히 해묵은 이념 논쟁과 권력 다툼에 매몰되어, 국가의 명운이 걸린 AI 전략 수립과 실행에는 미온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AI는 국방력 증강, 첨단 산업 육성, 사회 시스템 효율화 등 국가 역량 전반을 좌우하는 핵심 동력이자, 새로운 동맹 관계 재편과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위한 핵심 전략 자원이다. 일본이 외교의 최전선에 AI 전문가를 배치하며 국익 추구를 공식화하는 동안, 우리는 어떤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일본 대사관에 AI 정책담당관을 배치하는 것은 각국 현지 상황에 맞는 AI 협력 모델을 발굴하고, 일본 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며, AI 관련 최신 정보 수집 및 분석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외교부가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의 범주를 넘어선다. 경제, 과학기술, 안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이 결합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다. 일본은 이미 외무성과 경제산업성, 총리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국가적 차원의 AI 외교 로드맵을 가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대안적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가? 우리 정부는 이미 ‘AI 국가전략’을 발표했지만, 그 실행력과 특히 구체적인 외교적 로드맵은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범부처 차원의 ‘AI 외교전략본부’와 같은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신설하여, 각 부처의 역량을 통합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초당적인 협력을 통해 AI 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 그리고 국제 협력을 위한 법적, 제도적 기반을 빠르게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소모적인 정쟁에 국가 역량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AI 외교전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시급하다.

특히 한국은 미국의 ‘AI 이니셔티브’ 및 유럽연합의 ‘신뢰할 수 있는 AI’ 프레임워크 등 주요국들의 AI 관련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일본이 공략하는 아세안(ASEAN) 및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과의 ‘AI 파트너십’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단순히 기술 수출에 머무는 것을 넘어, 한국형 AI 모델과 데이터 거버넌스 프레임을 국제사회에 제안하고 확산시키는 작업을 통해 AI 생태계 내에서의 우리의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 이는 일본이 선점하려는 시장과 영향력을 한국이 공유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략적 모색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국내 정치의 권력 지형 변화도 AI 외교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 집권 여당은 국가적 AI 전략의 컨트롤타워로서 명확한 비전과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는 단순한 선언을 넘어, 구체적인 예산 배정, 인력 확보, 국제 협력 추진 등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야당 역시 단순히 정부 비판에 그치지 않고, 대안적이고 현실적인 AI 외교 전략을 제시하며 건설적인 견제와 협력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 AI 시대의 외교는 더 이상 외교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국방부, 그리고 대통령실까지 아우르는 범부처적인 역량이 총동원되어야 하며, 이를 효과적으로 조율하고 통합할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일본의 이번 조치는 AI 시대의 외교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명확한 신호탄이다. 한국이 이 신호탄에 효과적으로 반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미래 기술 패권 경쟁과 국제 외교 무대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더 이상 내부 정치적 갈등과 이념 논쟁에 국가의 에너지를 낭비할 때가 아니다. 국가의 모든 역량을 한데 모아 AI 시대를 선도할 담대한 외교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일관되고 강력하게 실행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미래 번영과 안보를 좌우할 핵심적이고 시급한 과제다. 우리는 이 중대한 기로에서 정치권의 현명한 판단과 과감한 행동을 촉구한다.
— 윤태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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