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분리의 경고, 동아시아 ‘위험한 공존’의 역사를 되짚다

이(李) 대통령이 “종교재단의 정치개입은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천명했다. 이는 단순한 원론적 언급을 넘어, 한국 현대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정교(政敎) 유착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한국 사회에서 특정 종교 단체는 선거 시기마다 특정 후보나 정당에 대한 조직적 지지를 선언하며 영향력을 과시해왔고, 차별금지법 제정 등 특정 입법 과정에서는 거대한 압력 단체로 기능하며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이러한 행위가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넘어,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월권 행위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종교적 신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되, 그 신념이 공적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국가적 선언이다. 이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고유한 과제가 아니다. 이웃 국가인 일본의 뿌리 깊은 유착 구조와 중국의 극단적 통제 모델은, 정교 관계 설정이라는 변수가 국가의 안정성과 정체성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냉엄한 교본이다.

가장 직접적인 반면교사는 일본 자민당과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유착 스캔들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 피살 사건은 수십 년간 수면 아래에서 작동해 온 양측의 공생 관계를 폭력적으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협력을 넘어섰다. 통일교는 신도들을 동원해 자민당 후보, 특히 극우 성향 정치인들의 선거 운동원으로 활동하게 하고 막대한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그 대가로 자민당은 통일교의 국내 활동을 비호하고, 더 나아가 당의 핵심 정책인 헌법 개정이나 동성혼 반대, 성평등 정책(젠더 프리) 저지 등에서 통일교의 교리와 일치하는 이념적 연대를 구축했다. 이는 특정 종교 단체가 집권당의 정책 결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며 국가의 방향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 한 심각한 사례다. 이 스캔들은 일본 국민에게 정치 시스템 자체에 대한 깊은 불신과 함께, 전후 민주주의가 방치해 온 ‘정치와 종교의 회색지대’가 국가를 얼마나 병들게 할 수 있는지를 처절하게 각인시켰다. 이 대통령의 경고는 바로 이 회색지대가 한국 사회에 고착화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선제적 조치로 분석된다.

일본의 정교 관계는 더 제도화되고 복잡한 형태도 띤다. 거대 불교 종교단체인 창가학회(Soka Gakkai)를 지지 모체로 하는 공명당의 존재가 그것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의 일사불란한 조직력과 투표 동원력을 바탕으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며 수십 년간 일본 정치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자민당과의 연립정부를 통해 안정적으로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며 자신들의 정책 의제를 관철시켜왔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종교 단체가 정당이라는 합법적 틀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민주주의적 모델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심각한 딜레마가 내재한다. 당의 주요 노선과 정책이 과연 일반 국민의 여론을 수렴한 결과인지, 아니면 창가학회라는 특정 지지 모체의 교리와 이익을 우선한 결과인지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당 지도부 선출과 의사결정 과정의 폐쇄성은 현대 정당이 갖춰야 할 민주적 정당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일본의 사례는 종교의 정치 참여가 합법의 외피를 쓰더라도, 그것이 초래하는 민주주의의 원리적 왜곡과 사회적 긴장 관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난제를 던진다.

시선을 중국으로 돌리면 정반대의 극단적 모델이 나타난다. 중국 공산당은 공식적 무신론을 국가 이념으로 삼고, 모든 종교를 ‘중국화’라는 명분 아래 당의 철저한 통제하에 두고 있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이 ‘종교의 중국화’ 정책은 더욱 강화되어, 모든 종교 교리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에 부합하도록 재해석되어야 하며, 종교 시설에는 당의 이념을 선전하는 문구가 국기와 함께 걸려야 한다. 바티칸과의 갈등 속에서 주교를 자체적으로 서임하는 가톨릭애국회, 당의 영도를 받는 삼자애국운동(개신교)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티베트 불교에 대해서는 달라이 라마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당이 직접 판첸 라마를 지정하며,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이슬람교도에게는 재교육 캠프를 통한 사상 개조를 강요한다. 이러한 철권 통치의 기저에는,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어떠한 독립적 조직이나 사상 체계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깔려 있다. 태평천국의 난과 같은 역사적 트라우마는 종교가 조직화될 때 체제 전복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각인시켰다. 중국의 ‘정교종속’ 모델은 국가 안정을 명분으로 종교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부정하며, 그 결과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전면적 억압으로 귀결된다.

일본의 ‘위험한 공존’과 중국의 ‘강압적 종속’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한국의 정교분리 원칙은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이 두 모델 모두를 답습하지 않고, 헌법 정신에 입각한 독자적인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명확히 한 것이다. 한국은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 오랜 역사와 조직력을 갖춘 불교와 가톨릭 등 강력한 사회적 자본을 지닌 종교 세력이 공존하는 독특한 지형을 갖고 있다. 이들 종교 단체는 막대한 재정 능력과 언론 매체, 교육 기관 등을 통해 여론 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는 정치권에겐 외면하기 힘든 유혹으로 작용한다. 특히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특정 종교 집단이 이념적 블록의 한 축으로 동원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통령의 경고는 이러한 현상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이는 특정 종교를 향한 공격이 아니라, 모든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는 헌법적 중립성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보편적 원칙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다.

궁극적으로 정교분리 문제는 한 국가의 법률 체계를 넘어, 정치 공동체의 성숙도와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이웃 국가들의 사례는 이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울 때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일본의 불투명한 유착은 정치 부패와 냉소주의를 심화시켰고, 중국의 전면적 통제는 인간의 기본권을 질식시켰다. 이 대통령의 선언은 한국이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들 사례를 깊이 성찰하고, 헌법 정신에 기반한 명확하고 일관된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다. 이 원칙이 향후 구체적인 입법과 정책을 통해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고질적 병폐를 치유하고 사회 통합에 기여하는 견고한 방파제로 기능할 수 있을지를 냉철한 시선으로 주시해야 할 때다. 이는 국내 정치를 넘어, 예측 불가능한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한국의 국가적 안정성을 담보하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천유빈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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