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경고 ‘정교분리’…동아시아는 지금 ‘종교와 국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가

이(李) 대통령이 종교재단의 정치 개입을 ‘헌법 위반’으로 규정한 것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를 넘어, 국가 권력과 종교 집단 간의 경계선을 다시 긋겠다는 공식 선언이다. 이는 한국 사회 내부에 오랫동안 잠재해 온 구조적 긴장이 수면 위로 부상한 사건이자, 동시에 동아시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와 종교의 관계 재정립’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지금 던져진 질문은, 이번 선언이 일시적인 갈등 표출인지, 아니면 국가 거버넌스 철학의 근본적인 전환을 예고하는 신호탄인지의 여부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제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한다. 원칙은 명확하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한국의 주요 종교 단체들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며 도덕적 권위와 사회적 영향력을 축적했다. 이 역사적 배경은 종교계에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이들이 보유한 막대한 조직력과 자금력은 특정 정책에 대한 로비, 선거 과정에서의 집단적 의사 표명 등 직접적인 정치 활동으로 이어지며 세속 국가의 기능과 마찰을 빚어왔다. 대통령의 발언은 바로 이 ‘회색지대’를 정조준한다. 보호받아야 할 종교적 신념의 표현과 허용될 수 없는 정치적 개입 사이의 법적·제도적 기준을 국가가 확립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논쟁의 핵심은 종교 단체의 집단적 정치 행위를 교인들의 순수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행위로 볼 것인가, 혹은 민주적 절차를 왜곡하는 제도적 월권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이러한 경계 설정의 중요성은 역내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더욱 명확해진다. 중국의 모델은 통제와 종속으로 요약된다. 베이징의 접근법은 단호하다. 종교는 국가와 공산당에 복무해야만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 ‘종교의 중국화(Sinicization)’ 정책은 신학 교리와 조직 운영 방식을 사회주의 이념과 국가가 정의하는 ‘중화 문화’에 맞춰 재편하려는 체계적인 시도다. 지하교회 신자부터 위구르 무슬림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국가 통제에 저항하는 집단은 신앙인이 아닌 국가 안보와 사회 안정을 저해하는 위협 세력으로 규정된다. 중국에 있어 정교분리는 종교가 정치에 완전히 예속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절대적 통제 모델은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민주적 긴장 상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일본은 제3의 길, 즉 ‘모호한 공생’과 ‘잠재적 위험’이 공존하는 복합적 모델을 제시한다. 전후 평화헌법은 군국주의의 이념적 토대였던 국가신토(國家神道)를 해체하기 위해 엄격한 정교분리 원칙을 도입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교(政敎) 간의 미묘한 공생 관계가 유지되어 왔다. 거대 불교 단체인 창가학회(創價學會)를 지지 기반으로 하는 공명당은 수십 년간 연립정권의 한 축을 담당하며 종교적 영향력을 제도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이는 일본 정치 지형의 일부로 용인되어 왔으나, 아베 신조 전 총리 피살 사건은 이 모호함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냈다. 사건을 계기로 집권 자민당과 통일교 간의 깊고 불투명한 유착 관계가 폭로되면서, 일본 사회는 정치 권력과 종교 단체 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강요받았다.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불분명한 경계는 심각한 정치적 리스크를 내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결론적으로 서울, 베이징, 도쿄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방법과 동기는 다를지언정, ‘국가가 종교를 포함한 강력한 비국가 행위자들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공통된 흐름을 시사한다. 지정학적 경쟁과 이념 대립이 격화되는 시대에 국가 통합과 내부 안정은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중국은 직접적 통제를, 일본은 아베 사건 이후 투명성 강화를, 한국은 대통령의 경고를 통해 국가 권위의 재확립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국내 정치 문제를 넘어, 국가 정체성과 공공질서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국가의 역할을 공고히 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대통령의 선언은 길고 험난한 법적·정치적 논쟁의 서막을 열었다. 향후 정세를 가늠할 핵심 변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가 이 원칙을 관철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입법·행정 조치를 취할 것인가. 둘째, 주요 종교계가 법적 투쟁, 대규모 시위, 혹은 암묵적 순응 중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셋째,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이 양분된 여론의 향방. 넷째, 정부의 조치를 ‘종교의 자유 탄압’으로 규정할 수 있는 국제 인권 단체들의 반응이다. 한국에서 이 갈등이 어떻게 귀결되느냐는 향후 국내 정교 관계의 중요한 선례를 남기는 동시에, 신앙과 자유, 그리고 국가 권력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 있는 동아시아 이웃 국가들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참조점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 천유빈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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