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는 ‘나치’다: 대통령의 선언, 과거사 청산인가 미래를 향한 경고인가?

“군사 쿠데타는 나치 전범을 처리하듯 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를 넘어 대한민국 헌정사의 물줄기를 바꾸려는 선언에 가깝다. 이 한 문장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반역 행위에 대해 더 이상 관용이나 타협은 없다는, 서슬 퍼런 경고다. 나치 전범. 이 단어가 소환하는 이미지는 명확하다. 반인륜적 범죄, 인류 보편의 가치 파괴, 그리고 그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절대악’이다. 대통령은 군사반란을 단순한 국내법 위반이 아닌,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 가치에 대한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과 같은 수준의 역사적·법적 심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발언의 칼날은 정확히 대한민국의 아픈 과거를 향한다. 5·16과 12·12. 두 차례의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주역들은 단죄되기는커녕 한때 국가 지도자로 추앙받았고, 사법적 심판 이후에도 ‘국민 통합’이라는 모호한 명분 아래 사면복권됐다. 이는 민주주의를 파괴한 행위에 대한 대가가 얼마나 미미할 수 있는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비극적 선례를 남겼다.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바로 이 ‘실패한 과거사 청산’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자, 그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나치’라는 극단적 비유는, 쿠데타가 결코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없으며 오직 형사적·역사적 단죄의 대상일 뿐임을 명시하는 강력한 쐐기다.

하지만 선언의 무게만큼이나 현실의 벽은 높다. ‘나치 전범처럼’ 처리한다는 것은 현행법 체계를 넘어서는 초법적 단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헌법의 대원칙인 형벌불소급의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소급입법이 가능하다는 국제법적 논리가 존재하지만, 이를 국내 쿠데타 세력에게 적용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법리적 토대는 아직 부재하다.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한 정치적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제도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 수준의 거대한 사회적 논의와 입법적 결단이 필요하다. 야권과 법조계에서 즉각적으로 제기될 위헌성 논란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가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왜 지금 이 시점에 이토록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었을까. 표면적으로는 다시는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민주주의 수호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 이는 현 정권의 정체성을 ‘반(反) 쿠데타’, ‘민주주의 수호’로 확고히 각인시키려는 시도일 수 있다. 동시에 잠재적 반대 세력, 특히 군 내부의 보수 엘리트나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 향수를 가진 이들에게 보내는 명백한 경고장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는 사회 전체에 ‘민주주의의 적’이 누구인지를 규정하고, 이를 통해 국론을 결집하며 정국 주도권을 강화하려는 고도의 정치 전략으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하다.

결국 이 선언의 진정한 의미는 ‘시스템’ 구축에 있다. 군이라는 특수 집단 내부에서 헌정질서 파괴 음모가 발생했을 때, 이를 내부에서 고발하고 저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수적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쿠데타를 계획하는 것만으로도 나치 전범과 같은 파멸을 맞게 될 것이라는 공포에 가까운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반역의 시도 자체를 원천 봉쇄하려는 극약처방이다. 이는 내부고발자 보호를 넘어, 잠재적 반역자들에게 ‘성공해도 죽고, 실패해도 죽는다’는 인식을 각인시키는 일종의 심리적 방화벽을 구축하는 작업이다. 과연 이 선언이 미래의 쿠데타를 막을 견고한 제도로 구체화될 것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정치적 공방 속에 휘발될 것인가. 대통령이 던진 이 무거운 질문에 우리 사회가 어떤 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 송예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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