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7.9조 내년도 예산안 본회의 통과, 구조적 갈등과 국가재정의 분기점
2025년 대한민국의 내년도 예산안이 3일 새벽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총액 727조9000억 원. 이 수치는 역대 최대 규모이자, 코로나19 이후 중단됐던 긴축의 이름 붙은 ‘재정 정상화’ 명분과 갈등의 단면에서 탄생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논쟁의 핵심은 단순히 수치의 크기나 항목별 분배가 아니다. 표면적 합의 뒤에 감춰진 국가재정 운용의 불안정, 정치적 타협의 메커니즘, 그리고 정책 집행의 신뢰 위기가 근본 문제로 남는다.
우선 가장 먼저 도드라지는 점은 예상과 다르게 막판까지 여야의 초강경 대립이 표출되었으나, 예년보다 늦어지지 않고 합의 통과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보편 증세 논의나 구조조정 없이 “재정 건전성 관리” 구호만을 내세워 각종 쟁점예산—이른바 ‘알박기 예산’, 고용·복지, SOC, 국방— 등의 증액·삭감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정치권의 복합적인 이해관계가 작동했다. 본질적으로 재정 운용의 지속 가능성과 확장·복지 요구 간 충돌, 세수 부족에 대한 정치적 책임 회피 성향이 본예산 협상 전 과정에 배어 있었다.
올해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국세수입 감소와 추가경정예산(추경) 가능성에 대한 기정사실화다. 2024년 한 해 동안 정부는 대기업 감세, 보유세 완화, 경기 둔화 등으로 세입 추정치에 여러 차례 차질을 빚었다. 이에 따라 내년도 예산안 역시 세입 부족이 불가피한 상황임에도, 정부와 국회는 정책 우선순위를 조정하기보다 단기적 재정지출 확대에만 방점을 찍었다. 특히 복지·의료 예산, 국방비, 지역 SOC, R&D 사업과 관련해 증액을 요구하는 지역·이익집단의 압박이 거의 그대로 반영된 점은 국가 재정의 전략적 유연성을 위축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다.
국회 내 여야 합의 구조도 주목할 지점이다. 민주당이 표면적으로는 복지 예산과 서민 지원 확대를, 국민의힘은 건전 재정과 불필요한 지출 축소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 디테일에서는 여야 모두 총선 기조 및 지역 민원 실현에 예산증액을 집중하는 모습을 피하지 못했다. 일례로, 어린이병원·지방의료원 등 설비 지원, SOC 예산 등은 각 당의 주요 지역구에 우선 배분되었다. 이에 따라 결과적으로 각종 목적성 ‘포퓰리즘’ 예산은 증가한 반면, 실질 구조개혁을 통한 재정 혁신 방안은 거의 빠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산안 통과 이후 현실적으로 남겨진 구조적 우려는 컸다. 우선, 2026~2027년도 세입·세출 전망의 불확실성이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 약화, 고령화 심화로 인한 복지재정 증가, 국방현대화 재원 수요 등 당장 내년부터 장기적 국가부채 증가와 재정적자 누적 리스크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올해 이미 국가채무는 1100조 원 돌파가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기재부와 국회 예산처 자료를 종합하면, 향후 5년 내 국가채무비율이 60%까지 빠르게 근접할 수 있다. 즉, 내년도 예산이 정치적 합의의 결과이자, 미래 재정위기 씨앗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적으로도 이번 예산안은 여야 간 권력구조와 입법 주도권 방향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여야가 힘겨루기에 집중하는 사이, 예산안 내 세부 항목들은 비공개 소위원회에서 신속하게 결정되었고 그 과정에서 전문성·투명성이 담보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SOC 예산 확대, 지자체 이전사업과 같은 고전적 ‘밀실합의’ 관행이 반복되었다. 이는 예산정책의 대의적 정당성 약화와 예산주체(정부·국회) 간 책임 전가를 유발한다. 예산 편성·집행 시스템의 근본적 개선 없이는 국가재정의 지속가능성은 물론, 국민적 신뢰 회복도 요원하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된다.
이번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드러난 또 다른 경향은 ‘긴축 재정’ 담론의 이면이다. 정부는 ‘불요불급한 재정지출 축소’를 슬로건으로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복지, 청년 일자리, 지방 교육·인프라 등 중복·포퓰리즘적 성격의 예산이 더욱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민생결핍 해결을 명분으로 예산 팽창과 정치권의 인기영합주의가 재정 건전성 논리마저 잠식했다고 지적한다. 대체로 지출 감축 한계 속에 연공서열적 혹은 선심성 항목의 잉여예산, 업계 경직된 보조금 구조 등이 심각한 구조적 난맥상임이 재확인된 셈이다.
보건의료, R&D, 지역균형발전 등 ‘미래 성장동력’ 투자라 불리는 분야조차 최종 심의 과정에서 대폭 삭감되는 등, 장기 혁신의제는 단기 필요와 정치적 이해관계에 가려 후순위로 밀렸다. 반면 군사, 안보, 민생보조, 산단·도로 인프라 등 직접적 이해당사자가 많은 실물예산은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한국 예산정치의 고질적 징후이자, 포퓰리즘-정책실용주의 간 균형 상실로 해석할 수 있다.
정리하면 727.9조에 달하는 내년 예산안 통과는 국가재정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과 정치적 의사결정의 한계를 다시금 적나라하게 드러낸 점에서 중대한 시사점을 갖는다. 인구구조 변화, 생산성 침체,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과 같은 거시 리스크가 확대되는 국면에서, 정치권 주도하 예산편성·심의 과정의 투명성·전문성을 강화하고, 중장기 재정전략 및 우선순위 조정 원칙을 체계적으로 정립해야 한다. 미래세대의 재정 부담을 실질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법·제도적 개혁, 그리고 국민 신뢰 회복을 뒷받침할 책임정치 구현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 유상민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