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1%의 경고: 저속성장 턴어라운드, 해답은 ‘그린·전기·반도체’의 삼각추

OECD가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1.0%로 유지하고 내년 전망을 2.2%에서 2.1%로 낮췄다는 신호는, 경기의 ‘저속 차선’에 오래 머물렀다는 냉정한 판정이다. 수출과 반도체만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던 전형적인 회복 공식을 더는 신뢰하기 어려워졌다. 금리 고점 체류, 가계부채 상환 부담, 실질임금 회복 지연이 소비를 묶어 두는 사이, 기업은 글로벌 수요 둔화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이유로 대규모 투자를 미루고 있다. 단기 처방의 레버가 약해진 만큼, 구조적 엔진에 불을 붙여야 한다. 그 축은 재생에너지·전기차·배터리로 대표되는 ‘그린 제조업’과 전력 인프라다.

진단의 첫 번째 축은 수출 구조다. 반도체는 데이터센터·AI 투자 사이클을 따라 회복하고 있지만, 자동차와 2차전지는 선진국의 고금리·보조금 축소와 가격경쟁 심화로 둔화가 뚜렷하다. 유럽은 친환경 규제의 강도는 높지만 실질 구매력과 충전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해 EV 전환 속도가 지역별로 들쭉날쭉하다. 미국은 IRA 효과로 북미 현지화가 가속화되는 대신, 보급 초기에 불가피한 품질·가격 민감성이 커져 재고 조정이 늘어났다. 중국은 가격 파괴와 내수 흡수력으로 글로벌 판도를 흔들고 있다. 한국 배터리 3사는 북미 조인트벤처로 방어선을 구축했지만, LFP 급부상과 원가전쟁의 파고 속에 NCM의 기술 우위를 ‘비용 경쟁력’으로 번역하는 속도가 관건이다.

두 번째 축은 전력망과 에너지비용이다. 기업의 RE100 이행은 본격화됐지만 PPA 물량, 송전망 용량, 계통 접속 대기라는 ‘3대 병목’이 투자 속도를 결정한다. 데이터센터·AI 팜의 전력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전기요금의 예측가능성과 장기 고정가격 계약의 가용성이 투자지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재생에너지 입찰·정산 구조를 보완하고, 대용량 ESS와 수요반응자원(ADR)을 계통운영의 핵심 자산으로 편입해야 한다. 이 과정은 단순 전력정책이 아니라 제조업 설비투자와 직결된 산업정책이다.

국제 비교는 더 분명하다. 미국은 재정 여력과 에너지 자급, AI 인프라 투자로 잠재성장을 소폭 상향시키는 분위기다. 유럽은 에너지 가격이 안정됐지만 제조 경쟁력 회복이 더디고, 중국은 부동산 디레버리징과 내수 불확실성으로 변동성이 크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의 1%대 성장은 ‘평균 이하 리스크’가 아니라 ‘체계 전환 지연의 결과’다. 이제 수출 품목의 업사이클을 기다리는 대신, 전력·인센티브·표준 3박자를 맞춰 글로벌 수요를 국내 투자로 끌어들이는 능동적 선택이 필요하다.

해법은 숫자보다 구조를 바꾸는 데 있다. 첫째, 친환경·전기화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성능연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단순 국산부품 비중보다 효율·에너지절감·탄소저감 성과에 인센티브를 배분하면, 기술혁신과 비용절감이 동시에 촉진된다. 배터리의 경우 하이망간 NCM, LMFP, 실리콘음극·고체전해질 등 차세대 로드맵에 대한 R&D와 파일럿라인 지원을 ‘시장 검증’과 이어 붙여야 한다. 둘째, 충전 인프라의 질적 도약이 필요하다. 400kW급 초급속 충전망의 전국 스파인 구축, 충전 품질(가동률·안정성) 공개, 결제·요금제 표준화는 EV 보급의 체감 속도를 좌우한다. V2G 상용화를 위해 분산자원 중개시장에 양방향 참여를 허용하고, 배터리 잔존가치 평가 기준을 마련해 중고 EV 시장의 유동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배터리 여권’과 원산지 추적을 산업 표준으로 내재화해야 한다. 유럽의 배터리 규제와 CBAM, 미국의 외국우려단체(FEOC) 규정은 공급망의 ‘투명성 프리미엄’을 만든다. 양극재·음극재·전해질·분리막의 탄소발자국, 재활용 비율, 재생에너지 사용비중을 모듈 단위로 기록·검증하면, 한국산의 신뢰도는 곧 프라이싱 파워가 된다. 흑연의 대중 의존도 완화, 니켈의 인니 편중 리스크, 리튬 조달선 다변화는 국가 차원의 자원외교와 연동해야 한다.

넷째, 계통 대수선이 필요하다. 해상풍력·태양광의 대규모 입지를 전제하는 송전망 확충과 허가기간 단축, 가상발전소(VPP)와 시간대별 요금의 본격 도입은 산업용 전력의 ‘가격·탄소·안정’ 삼각균형을 맞출 지렛대다. 대형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한 전력예약제, ESS 설치의 감가상각 특례, 재생-PPA 장기계약에 대한 정책금융 보증이 결합되면, 반도체·배터리·전기차 라인의 투자 타이밍이 앞당겨진다.

기업 전략의 우선순위도 명확하다. 완성차는 하이브리드를 교두보로 EV 전환 비용을 분산하되, 800V 아키텍처·SiC 인버터·열관리 고효율화로 전력소비를 줄여 ‘같은 배터리로 더 멀리 가는’ 경쟁력을 만들어야 한다. 가격 경쟁은 LFP 조달과 모듈 공정 혁신, 소프트웨어 경쟁은 SDV·OTA·앱스토어 생태계에서 판가 인상 요인을 발굴해야 한다. 배터리사는 북미 현지화에서 생산 안정화와 수율 개선으로 현금흐름을 재정비하고, ESS·상업용 스토리지로 포트폴리오를 넓혀 사이클 변동을 줄여야 한다. 소재·장비사는 배터리 리사이클(블랙매스), 실리콘음극, 전해질 첨가제, 전고체 전환 공정에서 ‘국내 테스트베드→글로벌 공급’ 경로를 설계할 시점이다.

리스크 관리도 현실적이어야 한다. 홍해·중동발 운임 상승은 원가와 납기 리스크를 키운다. 미 대선 이후 IRA 세부 규정과 관세정책의 변동성은 북미 공급망을 흔들 수 있다. 유럽 경기 둔화가 심화되면 EV·배터리 수요의 하방이 커질 수 있고, 국내 부동산 PF·지방금융권의 스트레스는 내수와 투자 심리를 동시에 위축시킨다. 통화완화의 속도 조절, 취약부문 선제 자본확충, 정책금융의 ‘그린 타깃팅’은 필수 안전망이다.

OECD의 1.0%는 결과가 아니라 경고음이다. ‘느리지만 질 좋은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구조 전환을 미루면, 다음 사이클의 과실은 다른 나라 것이 된다. 선택지는 분명하다. 재생에너지와 전력망을 산업정책의 중심에 두고, EV·배터리·반도체·데이터센터가 얽힌 ‘전력 집약형 첨단제조’에 규제·세제·금융을 집약하는 것. 한국은 이미 핵심 부품과 설비 경쟁력을 갖췄다. 남은 과제는 인프라와 제도의 일치, 그리고 속도다. 1%에서 2%대로의 복귀는 경기 사이클의 시혜가 아니라 에너지 전환의 실행력에서 온다. 녹색 전환을 주저하는 경제는 느리고 불안하다. 그린을 산업으로 만드는 경제는 빠르고 탄탄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향 전환이 아니라 가속 페달다.

— 강은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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