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종의 씁쓸한 고백과 한국 배우의 헐리우드 도전, 그 그림자와 의미
김민종이 ‘라디오스타’에서 밝힌 헐리우드 진출의 씁쓸한 기억은 단순히 흥행 실패의 아픔만을 넘어서 배우 개인의 고뇌와 한국 배우들의 글로벌 도전에 내재된 복합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심결에 내뱉은 듯한 ‘노 개런티, 많이 홍보해달라’는 말은 소탈한 농담처럼 들릴 수 있으나, 거기에는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또 국내외 시장에서 방황하는 배우의 운명이 진하게 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영화는 내수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아시아 및 세계 무대에서 점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는 곧 많은 배우와 감독들에게 해외 진출의 꿈을 심어줬다. 그러나 막상 헐리우드라는 절대 강자 앞에서 우리의 많은 도전은 기대와 달리 좌절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김민종의 고백이 와닿는 건, 이 같은 현실이 한국 배우들의 헐리우드 성공담 이면에 감추어진 수많은 실패와 성찰, 자기고립의 반복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가 흥행에 참패했다는 표현은 쉽게 소비된다. 하지만 이런 패배의 이면에는 수많은 노력이 쌓여 있었다. 김민종 또한 해외작 출연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는 기대와 부담, 한류라는 옷을 입고 나간 후 느끼는 언어와 문화, 시스템의 벽에서 오는 좌절감을 고스란히 경험했다. ‘노 개런티’ 출연이 일회성 이슈가 되지 않는 것은, 헐리우드 또는 글로벌 시장과 맞닿은 한국 배우 가운데 상당 수가 마주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마치 새장의 문을 열고 날아오른 새가 넓은 하늘 아래서 좌절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
해외 진출이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성공의 환상이 동반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언어 장벽, 현지 네트워크 부족, 역할의 한계성 등 다양한 요인 때문에 비중 있는 역할을 맡거나 흥행 성공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드물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언급한 ‘문화 번역 비용’처럼 한 배우가 익숙한 언어와 습관, 연기 문법을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옮겨왔을 때 발생하는 어색함은 생각보다 크다. 한예리(미나리), 배두나(클라우드 아틀라스), 그리고 지난 해 ‘오징어 게임’ 이후 각종 글로벌 시리즈에 진출한 정호연까지, 성공의 문턱에는 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의 그림자가 그려져 있다.
김민종은 이번 방송에서 흥행 실패로 혼자 남겨졌던 심정을 담담히 드러낸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이후, 아무런 대가 없이 영화 홍보에 나선다. 언뜻 졸렬해 보일 수 있으나, 이 모습은 배우 본연의 치열함, 예술가의 문제의식 그리고 업계 시스템 변화의 가능성을 압축한다. 헐리우드에서의 ‘노 개런티’ 출연은 관행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초대형 에이전시가 배우에게 “당장 돈이 아니라 경력으로 삼으라”며 설득하는 풍경은 이제 우리의 현장에서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희생의 끝에서 무엇이 남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도 피할 수 없다.
업계 전반을 살펴보면, 최근 넷플릭스와 디즈니+, 아마존 프라임 등 OTT 플랫폼의 성장으로 비주류 시장의 문이 더 넓어졌다. 한국 배우들이 단순 헐리우드 진출을 넘어, 글로벌 OTT 오리지널 시리즈, 혹은 공동제작 작품 등 다양한 창구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지옥”과 “수리남”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신작 등을 통한 다양한 캐스팅, 그리고 윤여정의 오스카 수상까지, 이전과는 결이 다른 변화가 감지된다. 하지만 이 같은 조류 속에서도 김민종의 자전적 고백이 주는 뒷맛은 여전하다. 실패에서 오는 상실과 체념이 결코 개인만의 것은 아니다.
배우 스타일 분석 차원에서 보면, 김민종은 특유의 차가움과 따스함을 오가는 투명한 연기의 결을 지녔다. 영화, 드라마, 음악을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경력이 탁월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이 같은 다재다능함이 오히려 쉽게 소비되거나, 고정된 틀에 갇히기 쉽다. 한국 배우들의 해외 진출 전략 또한 개인의 재능이나 노력만으로 극복이 어렵다는 점을, 김민종의 ‘노 개런티’ 경험은 대변한다.
결국, 헐리우드 출연은 하나의 성취가 아닌, 또 다른 시작과 도전의 여정임을 다시 한번 되짚게 된다. 성공과 실패의 그늘 위에서 배우가 고뇌하고 자기를 다지는 행위, 그것이 진정 한국 배우들이 남길 수 있는 메시지가 아닐까. 김민종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창작자, 배우들은 물론 시스템 전반이 또 한 번 고민해야 할 진실을 송곳처럼 찌른다. 쉽지 않은 환상, 그러나 여전히 끝나지 않은 도전과 열정, 그 현장에 오늘의 문화부 영화·드라마 담당 기자로서 공감과 응원을 보낸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