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칼날, 도쿄의 메아리: 통일교 해산 검토의 지정학

대통령실이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정치 개입’을 이유로 특정 종교재단의 해산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선언은, 한국 국내 정치의 지평을 넘어 국제관계의 복잡한 체스판에 새로운 말을 올려놓은 것과 같다. 이 발언이 사실상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즉 통일교를 겨냥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결정의 동력은 서울이 아닌 도쿄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근원에는 2022년 7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격 사건이라는 거대한 비극이 자리한다. 따라서 이 사안을 국내의 정교분리 문제로만 축소해석하는 것은, 거대한 빙산의 일각만을 보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아베 전 총리를 향한 총성은 일본 정치의 금기였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혔다. 범인의 입에서 나온 ‘통일교에 대한 원한’은 곧바로 일본 집권 자민당(LDP)과 통일교 간의 수십 년에 걸친 검은 유착 관계를 백일하에 드러냈다. 이는 단순히 몇몇 정치인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수준이 아니었다. 통일교 일본 지부는 조직적으로 선거 시기에 신도들을 동원해 자민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고, ‘표’를 몰아주는 대가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해왔다. 동성혼 반대, 전통적 가족관 옹호 등 통일교의 교리와 맞닿아 있는 정책들이 자민당 내에서 힘을 얻는 배경에는 이러한 공생 관계가 있었다. 이 충격적인 실태는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지지율을 수직 하락시켰고, 일본 사회에 정치 불신을 극도로 팽배하게 만들었다. 궁지에 몰린 기시다 정부는 여론에 등 떠밀려 종교법인법상의 ‘질문권’을 수차례 행사해 교단의 조직 운영과 재정 문제를 파고들었고, 결국 조직성, 악의성, 계속성이 인정된다며 도쿄지방재판소에 해산명령을 청구하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서울의 ‘해산 검토’는 바로 도쿄에서 시작된 이 거대한 정치적 지진에 대한 필연적인 응답이자 동조(synchronization) 현상이다. 통일교는 한국에서 발원한 종교지만, 그 막대한 부와 국제적 조직력의 핵심 동력원은 일본 신도들의 ‘영감상법(霊感商法)’ 등으로 거둬들인 거액의 헌금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에서 터져 나온 문제의 본질이 결국 한국에 뿌리를 둔 종교 단체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는 더 이상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는 외교적,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이는 한일 양국이 국경을 넘어 활동하는 특정 단체라는 공통의 ‘회색지대 위협’에 대해, 비록 사전 조율은 없었을지라도 결과적으로는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가 되었다. 한쪽의 둑이 터지자, 그 물길의 상류에 있는 다른 쪽도 서둘러 제방을 점검하고 나선 형국으로, 국가 안보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주권 국가의 본능적 대응에 가깝다.

그러나 이 사안의 본질을 더 깊이 파고들면, 이는 단순히 한일 양국의 특수한 관계를 넘어, 21세기 주권 국가와 강력한 ‘초국가적 행위자(Transnational Actor)’ 간의 힘겨루기라는 보편적 함의를 지닌다. 통일교는 창시자 문선명 총재 시절부터 ‘반공’이라는 시대적 이데올로기를 매개로 국경을 초월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국제승공연합’을 창설해 전 세계적 반공 운동을 전개했으며, 미국의 대표적 보수지인 워싱턴 타임스(The Washington Times)를 설립해 워싱턴 정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활동은 통일교를 단순한 종교 단체가 아닌, 미디어, 교육, 비즈니스, 정치를 아우르는 거대한 글로벌 복합체로 만들었다. 이들은 국가의 법과 제도가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 활동하며, 자신들의 의제를 관철하기 위해 여러 국가의 정치 시스템에 동시에 침투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일본과 한국 정부의 연쇄적인 법적 조치는 지난 수십 년간 암묵적으로 용인되어 온 초국가적 행위자의 정치 개입에 대한 국가 주권의 ‘재선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비단 통일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구글이나 메타와 같은 거대 IT 기업이 데이터 주권을 위협하고, 국제 금융 자본이 개별 국가의 통화 정책을 무력화시키며, 강력한 국제 NGO가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현대 국제 사회에서, 국가는 자국의 정치적, 사회적 통합성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과 마주한다. ‘종교의 자유’라는 방패 뒤에 숨어 조직적인 정치 활동과 막대한 자금 이동이 이루어질 때, 국가의 사법적 개입은 ‘탄압’인가, 아니면 ‘주권 수호’인가. 통일교 사태는 이 민감한 경계선을 확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이 모든 문제의 뿌리는 냉전이라는 역사적 특수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산주의의 팽창이라는 실존적 위협 앞에서 서방 자유 진영은 때로 민주주의의 원칙보다 반공이라는 실리를 우선했다. 이 과정에서 통일교와 같은 단체들은 ‘믿을 수 있는 반공 파트너’라는 명분 아래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들이 구축한 인적, 물적 네트워크는 냉전이 끝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탈냉전 시대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하며 더욱 공고해졌다. 즉, 현재 한일 양국이 마주한 이 곤혹스러운 상황은, 반세기 전 냉전의 필요가 낳은 ‘전략적 모호성’이 남긴 청구서인 셈이다.

향후 전망은 극도의 불확실성 속에 놓여 있다. 일본의 해산명령 절차가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수년이 소요될 기나긴 법정 다툼을 예고하듯, 한국 역시 헌법 제20조가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원칙을 둘러싼 치열한 법리 공방을 피할 수 없다. 통일교 측은 이미 ‘종교 탄압’이라는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우며 국내외 여론전과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미국 내 보수 기독교계 및 정치권과의 오랜 유대를 활용한 외교적 압박 가능성은 정부로서도 가장 부담스러운 시나리오다. 또한, 재단 해산이 현실화될 경우, 국내외에 산재한 수조 원대 자산의 처리 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민사소송이 뒤따를 것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 조치를 넘어, 한 국가의 사법 및 행정 시스템의 역량을 시험하는 거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 도쿄발 충격파가 서울의 결단을 촉발했지만, 그 결단이 가져올 지정학적, 사회적 파장의 최종 규모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오지훈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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