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 속 풍경의 그늘, ‘오버투어리즘’이 우리에게 묻는 것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여행지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는 아마 그 목록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할 이름 중 하나일 겁니다. 곤돌라가 유유히 흐르는 물길, 고풍스러운 다리 위에서 나누는 속삭임,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매는 낭만. 우리는 수많은 영화와 엽서 속에서 본 그 풍경을 직접 마주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때로 꿈과 거리가 멉니다. 인파에 떠밀려 걷기조차 힘든 산 마르코 광장, 운하를 뒤덮은 쓰레기와 코를 찌르는 악취, 그리고 그 속에서 지친 표정으로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모습. 아름다운 관광 도시의 빛나는 명성 뒤에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과잉 관광)’이라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두 개의 거대한 파도와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후변화로 인해 점점 높아지는 바다, 즉 ‘아쿠아 알타(Acqua Alta)’라는 물리적인 파도입니다. 다른 하나는 도시의 수용력을 넘어선 채 끊임없이 밀려드는 관광객이라는 사회적인 파도입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10조 원에 가까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거대한 수중 장벽 ‘모세(MOSE)’를 건설하며 물리적 파도에 맞서고 있지만, 사회적 파도를 막을 둑은 보이지 않습니다. 펜데믹 이전 연간 3,0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광객이 작은 섬 도시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베네치아는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구체적인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한때 17만 명에 달했던 베네치아의 인구는 이제 5만 명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관광객을 위한 단기 임대 숙소(에어비앤비)가 늘어나면서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와 생활 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도시를 떠나고, 그 빈자리는 기념품 가게와 간이식당이 채웁니다. 30대 청년 마르코 씨는 “어릴 적 뛰놀던 골목은 이제 관광객들의 셀카 배경이 되었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던 빵집은 사라졌다”며 “이 도시는 이제 우리를 위한 곳이 아닌 것 같다”고 토로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도시가 영혼을 잃어가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거대한 테마파크로 전락하면서 공동체는 서서히 붕괴하고, 도시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것입니다.
베네치아의 비명은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투어리스트, 너희 집으로 가라(Tourist, Go Home)’는 낙서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홍등가 투어를 금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행지, 제주도로 향합니다. 연간 1,3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제주는 ‘쓰레기 섬’이라는 오명을 얻을 만큼 심각한 환경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무분별한 개발로 중산간이 훼손되고, 해안은 플라스틱으로 몸살을 앓습니다. 생활하수와 쓰레기 배출량은 처리 용량을 아득히 넘어섰고, 교통체증과 부동산 가격 폭등은 도민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제주의 한 해안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60대 김 씨는 “예전에는 맑은 물에 발 담그고 고기를 잡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젠 쓰레기만 가득하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관광객이 남긴 경제적 효과 이면에, 도민들이 감내해야 하는 사회적, 환경적 비용이 너무나도 커져 버린 현실입니다.
결국 오버투어리즘의 본질은 ‘공유지의 비극’입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이라는 공유 자원을, 누구도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무분별하게 소비하면서 결국 모두가 그 가치를 잃게 되는 현상입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버린 쓰레기, 지역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모여 거대한 파괴의 파도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관광객의 윤리 의식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저가 항공과 공유 숙박 플랫폼의 발달로 여행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그에 따른 사회적·환경적 책임을 논의하는 속도는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관광객 유치에만 몰두해 온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또한 이 문제를 키운 주요 원인입니다.
세계 각국은 이 문제에 맞서 다양한 정책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올해부터 당일치기 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부과하기 시작했고, 거대 크루즈선의 도심 진입을 막았습니다. 페루의 마추픽추나 부탄처럼 하루 방문객 수를 엄격히 제한하는 곳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제주도가 ‘환경보전기여금’ 도입을 수년째 논의하고 있지만, 관광 산업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부딪혀 제자리걸음입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분명 필요한 조치이지만,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방향이 ‘지속가능성’과 ‘주민의 삶’에 맞춰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관광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어떻게 지역 사회에 재투자되고, 환경을 복원하며, 주민들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을까요? 관광객 수를 통제하는 것을 넘어, 방문객들이 지역 사회와 문화를 존중하고 책임감 있는 소비를 하도록 유도하는 ‘공정 관광’, ‘책임 관광’의 개념을 교육하고 확산시키는 노력이 시급합니다.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관광 산업 생태계 안에서 안정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입니다.
우리는 이제 여행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기로에 서 있습니다. 더 많은 곳을 ‘정복’하고, SNS에 올릴 사진을 찍는 소비적인 관광에서 벗어나, 방문하는 장소와 교감하고 그곳의 일부가 되는 ‘경험’으로서의 여행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내가 남기는 발자국이 그곳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 나의 즐거움이 누군가의 고통이 되지는 않는지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엽서 속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 아이들 세대에게도 온전히 물려주기 위한 책임은, 결국 그 풍경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 최현서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