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합의 처리와 한국 정치의 협치 시험대: 현실적 평가
2025년 예산안이 여야 합의로 처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대통령은 야당에 대해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하며 ‘모범적 모습’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언론이 이를 속보로 타전한 데서 드러나듯, 집권 초기 주요 현안의 처리 방식은 향후 국정운영 기조와 정치적 파트너십의 방향을 예고한다. 예산안 처리는 단순한 재정 배분이 아니라 정부와 의회, 여야 간의 권력관계와 상호 신뢰도를 드러내는 대표적 지표다. 이번 합의 처리의 표면적 평화와 별개로 이면에 존재하는 정치적 역학, 그리고 동아시아 주요국의 유사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재정정치 구조상 예산안은 여당이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다. 최근 수년간 12월 정기국회에서 예산안 처리가 법정기한을 넘기며 정쟁 소재로 활용되던 양상이 잦았다. 이번엔 이대통령이 직접 야당에 감사의 뜻을 표했으나, 결과에 초점을 맞추기 전에 ‘감사의 수사’에 정치적 계산이 개입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협치의 상징으로서 예산안 합의가 의미하는 바는 있음에도, 정치적 불신과 전략적 협상이 반복된 결과라는 점에서 자발적 신뢰보다는 상호 견제의 산물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주변국의 국회-행정부 관계와 비교해보면, 예산안이 정쟁의 소재가 되는 빈도는 한국에서 특히 높다. 중국은 일당체제 하에서 예산안이 정치적 긴장의 도구가 되지 않으며, 일본 역시 정부여당의 안정적 다수 속에서 예산안 논쟁의 정치적 파장이 비교적 약하다. 한국은 다당제와 극심한 정파주의, 지속적 대치구조의 영향으로 비교적 작은 이슈에도 정치적 불신이 증폭된다. 이는 협치의 구조적 제약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 등 제1야당 역시 협치에 적극 참여했다는 평가와 동시에, 실제 예산 편성 과정에서 주요 정책 기조에 있어 야당이 정부안을 대폭 수용하면서 정책 역량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더불어, 정치 일정과 연계된 야당의 전략적 선택, 즉 다른 국정현안(예: 검찰개혁, 대북정책 등)에서의 정치적 주도권 확보를 위한 거래적 협상 구조가 강화됐다는 해석도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번 국면은 실질적 협치라기보다는 ‘필요에 의한 규범적 타협’에 가깝다.
올해 예산안 쟁점은 복지·기초연금, 청년주거, 국방, 신성장동력 예산 등 경제사회구조 변화와도 직결된다. 야당은 복지 및 민생 예산 강화에 비중을 두었고, 여당은 재정건전성, 신산업 투자, 안보예산 강화를 중시했다. 최종 합의안은 복지와 신규산업, 국방의 균형을 맞췄으나 현장의 디테일에서는 각 이해당사자별로 불만이 남아있음이 확인된다. 그럼에도 이번 합의는 예산안 파행의 반복적 악순환을 끊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산업환경의 격변 속에서, 정치의 불확실성이 경제·외교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파 간 경쟁구도가 심화될 전망이다. 예산안 처리에 나타난 협치는 국정운영 안정성의 신호로 작용할 수 있으나, 구조적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한 그 효과는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급격히 변동하는 국내외 환경(예: 미중 분쟁, 반도체 등 전략산업, 북핵 위기)에서 예산안 협치가 실질 혁신과 사회적 신뢰강화로 연결되는지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예산안 합의 과정이 제도적 협치의 신호탄이 되려면, 단기적인 협상보다 장기적 정책연속성과 정치적 신뢰 구축이 필수적이다. 내년도 정책과제 집행과정에서 이번 합의가 얼마나 충실히 반영될지, 또한 여·야가 어떤 방식으로 견제와 협력을 병행해 나갈지 주목해야 한다. 구체적 문제해결 능력과 제도적 개혁의 성과 없이는 이번 합의 역시 일회성 정치 이벤트로 소멸될 위험이 높다.
— 천유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