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필요’와 ‘현실’의 충돌… 수술 없는 처방은 없다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 10년 이상 봉인됐던 의과대학 정원 확대 카드다.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고,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겠다는 의지까지 내비쳤다. 명분은 차고 넘친다. 필수의료 붕괴, 지역의료 소멸, 초고령사회 진입. 모든 지표가 의사 수 부족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진단이다.

팩트는 분명하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6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에 한참 못 미친다. 이마저도 수도권에 집중됐다. 서울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3.47명이지만, 경북은 1.41명, 충남은 1.54명에 불과하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같은 신조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사회 현상이다. 지방에서는 산부인과가 사라지고, 수술할 외과 의사가 없어 다른 지역으로 환자를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부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첫 단추가 ‘절대적인 수의 확충’이라고 본다. 공급을 늘려야 낙수효과든 분산 정책이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논리다.

의료계의 반발은 거세다. 이는 단순한 직역 이기주의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주장은 ‘양’이 아닌 ‘질’과 ‘분배’의 문제라는 점에서 정부의 진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의료계는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특정 분야와 특정 지역에 의사가 가지 않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항변한다.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는 고된 업무 강도와 잦은 의료소송 위험에 비해 보상(수가)이 턱없이 낮다. 반면 피부, 미용, 성형 등 비급여 진료 분야는 위험 부담이 적고 수입은 월등히 높다. 이런 기형적인 보상 체계를 그대로 둔 채 의사 수만 늘리면, 결국 늘어난 의사들은 서울 강남의 피부과 개원을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일 뿐, 지방의료 공백을 메우러 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의료 현장에서 입증된 ‘현실’이다.

정치적 함의도 간단치 않다.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 의대 증원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핵심 개혁 과제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의사 총파업에 밀려 증원 계획을 철회했던 기억은 현 정부에 반면교사가 됐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이 있었지만, 정부가 특정 직역 단체에 굴복했다는 비판은 피하지 못했다. 현 정부는 당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단단하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업무개시명령 등 법적 수단을 총동원해 파업에 대응할 태세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은 정부에 강력한 실행 동력을 제공한다.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카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경제적 관점에서 더욱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 의사 1명을 양성하는 데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투입된다. 교육 기간만 10년 이상이다. 단기적으로 증원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장기적으로는 ‘공급자 유발 수요’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의사 수가 늘어나면 불필요한 의료 행위가 증가하고, 이는 결국 국민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이어진다는 실증 연구는 많다. 가뜩이나 건강보험 재정 고갈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재정 추계와 지출 구조 개혁에 대한 면밀한 계획 없이 공급만 늘리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일 수 있다. 이는 보수 정부가 강조하는 재정 건전성 원칙과도 상충하는 지점이다.

결국 해법은 양측의 주장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데 있다. 의사 수 증원은 시대적 요구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이 분명하다. OECD 통계는 객관적 현실이다. 하지만 의료계가 지적하는 구조적 문제 해결 없이 밀어붙이는 증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증원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정부가 진정으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고자 한다면, 증원 발표와 함께 ‘당근과 채찍’을 담은 종합 패키지를 제시해야 한다.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를 파격적으로 인상하고,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을 완화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의무 복무하는 ‘지역의사제’나 특정 진료과목을 전공하는 조건으로 장학금을 지원하는 ‘공공의대’ 설립 등 구체적인 유인책과 제도적 장치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단순히 ‘몇 명을 늘리겠다’는 숫자 싸움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시스템의 문제이며, 시스템 전체를 수술해야 해결 가능하다.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이다. 정부는 여론을 등에 업고 힘으로만 밀어붙여서는 안 되며, 의료계 역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집단행동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의사 수’라는 단편적 처방을 넘어,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고질병을 치유할 ‘종합 처방전’을 누가 더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가에 이번 싸움의 성패와 국민의 신뢰가 달려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닌, 정교하게 설계된 청사진이다.

— 박희정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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