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의 ‘노동안전’ 메시지, 현장과 정책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

김민석 국무총리가 노동안전 점검회의를 주재했다.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회의에서 그는 ‘안전은 타협 불가한 원칙’임을 강조하며 엄정한 법 집행을 주문했다. 반복되는 장면이다. 정권의 성향과 무관하게 대형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정부는 언제나 회의를 소집하고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장은 바뀌지 않았다.

팩트는 숫자에 있다. 2025년 3분기까지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459명이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하루 1.7명꼴로 목숨을 잃고 있다. 특히 건설업과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의 사망사고 비중은 전체의 80%에 육박한다.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가장 취약한 고리에 닿지 못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정부의 메시지는 단호하다. 총리는 ‘무관용 원칙’을 내세웠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현행법 체계 안에서 기업의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발생한 대형 물류창고 화재와 조선소 폭발 사고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국정 기조를 재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경영계의 시각은 다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회의 직후 입장문을 냈다. ‘처벌 강화만으로는 산재를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다. 이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과잉 입법이며, 기업의 경영 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킨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소기업은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여력이 부족해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리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해법으로 처벌 대신 예방 중심의 지원 정책 확대를 요구한다. 규제와 처벌이라는 ‘채찍’이 아닌, 자율적 안전관리 역량을 키울 ‘당근’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노동계는 정부와 경영계 모두를 비판한다. 민주노총은 총리의 발언을 ‘실체 없는 구호’로 규정했다. 이들은 산재의 근본 원인이 위험의 외주화, 즉 다단계 하청 구조에 있다고 본다. 원청 대기업은 책임을 회피하고, 영세 하청업체는 안전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어떤 대책도 무용지물이라는 입장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을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전면 확대하고, 원청의 책임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결국 문제는 법의 실효성이다.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경영책임자에게 직접 형사책임을 물어 산재 예방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려는 취지였다. 법 시행 4년차, 평가는 엇갈린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안전보건 전담 조직을 확대하고 투자를 늘리는 긍정적 변화가 관측된다. 반면, 법의 칼날은 대부분 중소 하청업체 대표에게만 향했다. 지금까지 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대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는 없다.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은 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제적 비교는 한국의 현주소를 더욱 냉정하게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산재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은 0.41로, OECD 평균 0.28을 크게 상회한다. 38개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성적표다.

정부의 정책은 모순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 성장을 도모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안전 규제를 강화해 기업을 압박한다. 두 정책 목표가 현장에서 충돌하며 정책 신뢰도를 갉아먹고 있다. 안전 비용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하는 사회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하지만, 그 길은 요원하다.

총리가 주재한 회의는 시작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후속 조치다. 현장 감독 인력 확충, 중소기업 맞춤형 안전 컨설팅 지원 확대, 위험성 평가 제도의 실질적 운영 등 구체적인 대안이 예산과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 구호만 요란하고 실행은 더딘 과거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산업 현장의 비극은 정치적 수사로 막을 수 없다. 시스템의 문제이며, 시스템으로 풀어야 한다.

— 박희정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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