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법정’과 ‘공정한 재판’의 갈림길: 재판 중계 불허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법원의 망치가 내려쳐졌습니다. 김건희 여사가 관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 관련 재판의 핵심 증인인 전 투자자문사 임원 민 모 씨에 대한 증인신문 과정은 TV나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지 않을 것입니다. 재판부는 ‘중계로 얻을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이 증인의 인격권이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침해될 수 있는 사익보다 월등히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실익이 없다’는 간결한 결론 뒤에는 ‘국민의 알 권리’와 ‘공정한 재판’이라는,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고심해 온 두 가지 가치의 묵직한 충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생중계 허용을 촉구했던 시민사회와 일부 언론의 목소리는 명료했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의혹의 진실이 가려지는 과정을 온 국민이 직접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는 단순히 ‘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넘어, 사법 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판결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마치 우리가 자녀의 학교 운영위원회 회의를 참관하며 교육 현장의 투명성을 기대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과정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때, 그 결과에 대한 수용성도 자연스레 높아진다는 경험적 믿음이 깔려 있는 셈입니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정치적 파급력이 크고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일수록, 밀실 재판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법정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의 저울은 다른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법정은 진실을 가리는 엄숙한 공간이지, 여론의 향방을 가늠하는 콜로세움이 아니라는 대원칙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생중계가 가져올 ‘재판의 오염’ 가능성을 꾸준히 우려해왔습니다. 카메라 앞의 증인이나 피고인은 진실을 말하기보다 대중의 시선을 의식한 ‘연기’를 할 수 있습니다. 언론은 자극적인 발언만 편집해 내보내며 본질을 흐릴 수 있고, 이는 곧 재판부에 대한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한 평범한 직장인 A씨가 이웃과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고 상상해봅시다. 그의 모든 표정과 말이 전국에 생중계된다면, 그는 과연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주장할 수 있을까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사회적 지위나 관심도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할 헌법적 기본권이라는 것이 법원의 확고한 시각입니다. 증인이 느낄 수 있는 심리적 압박감, 그로 인한 진술의 왜곡 가능성까지 모두 고려한 신중한 결정으로 풀이됩니다.

법원이 언급한 ‘공공의 이익이 월등히 크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은 특히 곱씹어볼 지점입니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가 ‘이익’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생중계’라는 특정 방식이 알 권리 충족에 반드시 기여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재판의 공정성이라는 더 큰 가치를 훼손할 위험이 크다는 판단에 가깝습니다. 즉, 국민은 공개된 판결문과 언론의 충실한 보도를 통해 재판의 전 과정을 충분히 알 수 있으며, 굳이 실시간 영상 중계라는 방법을 통하지 않더라도 알 권리는 다른 방식으로 보장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법원의 논리가 과연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복잡한 법률 용어로 가득한 판결문을 해독하기보다, 생생한 법정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사법부가 충분히 헤아리고 있는가 하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번 결정은 하나의 판결을 넘어, 우리 사회의 사법 투명성에 대한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대에, 사법부는 여전히 신중함과 절제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국민의 신뢰는 투명한 공개에서 온다고 믿는 시민들의 목소리와, 공정한 절차의 보장에서 신뢰가 싹튼다고 믿는 사법부의 시선 사이의 간극. 이 간극을 어떻게 좁혀나갈 것인지는 비단 이번 재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국정농단 사건 등 주요 재판의 생중계 허용 여부를 두고 벌어졌던 논쟁의 연장선이며, 앞으로도 유사한 사건에서 계속해서 반복될 우리 사회의 숙제입니다. 법정의 문은 굳게 닫혔지만, 사법 신뢰를 향한 우리 사회의 고민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지 모릅니다.

— 최현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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