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반기 보고서’ 제안, 韓 자본시장에도 불어올 태풍인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 시 기업의 분기별 실적 보고 의무를 반기별로 완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세계 자본시장의 근간을 이루는 ‘투명성’과 기업의 ‘장기 성장’이라는 두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회계 주기 변경 문제를 넘어,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주주 자본주의’와 단기 성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될 수 있어 그 파장에 귀추가 주목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은 기업이 3개월마다 월가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압박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안목으로 연구개발(R&D) 투자와 고용 창출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논리에 기반한다. 실제로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등 저명한 경영인들 역시 분기별 실적 발표가 기업의 단기주의를 심화시키고 장기적 가치 창출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이들은 단기 이익 극대화를 위해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를 희생시키는 ‘분기 자본주의(Quarterly Capitalism)’의 폐해를 지적하며, 경영의 자율성과 장기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러한 주장은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들을 중심으로 더 큰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과도한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보수 진영의 경제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분기별 실적 보고는 투자자들이 기업의 경영 상태를 적시에 파악하고 합리적인 투자 결정을 내리는 데 필수적인 ‘정보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핵심 장치다. 만약 보고 주기가 6개월로 늘어날 경우, 투자자들은 기업의 잠재적 위험이나 실적 악화 신호를 제때 인지하지 못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의 정보 접근성이 기관 투자자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한 정부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는 자본시장의 신뢰를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라며 “기업의 자율성도 중요하지만, 시장 참여자들이 공정한 규칙 안에서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허무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는 기업 실적의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자본시장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결국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 증가로 이어져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논쟁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오랜 고민이기도 하다. SEC는 과거에도 기업 보고 주기 변경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바 있으나, 투자자 보호 원칙을 우선시하여 현행 제도를 유지해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SEC의 수장을 비롯한 규제 당국의 수뇌부 교체를 통해 해당 정책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절차의 변화가 아닌, 금융 규제 철학의 대전환을 의미하기에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현재 유럽연합(EU) 등 다수 국가는 반기 보고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미국의 변화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 변화 가능성은 국내 자본시장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당장 미국 증시에 상장된 국내 기업들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며, 장기적으로는 국내 기업 공시 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후 분기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며 투명성 강화에 주력해왔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제도 변화는 글로벌 자본의 흐름과 국내 자본시장의 운영 방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기업의 성장 잠재력 확충과 투자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균형 잡힌 정책 방향을 고심할 필요가 있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기업의 장기 성장 동력 확보라는 명분과 자본시장의 근간인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사이에서, 정책 당국의 깊은 고민이 시작된 셈이다.

결론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기 보고서’ 제안은 단기 성과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긍정적 취지를 담고 있으나, 정보 투명성 약화와 투자자 보호 소홀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향후 미국의 정책 방향이 어떻게 결정되든, 우리는 국내 경제 및 자본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투자자의 신뢰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공시 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 박지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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