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후 돌아본 ’12·3 비상계엄’, 세계는 한국의 ‘민주적 회복력’을 시험했다

정확히 1년 전, 대한민국 헌정사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 2024년 12월 3일 심야에 선포된 비상계엄은 국제 사회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안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당시의 국회 본관을 ‘도슨트’처럼 설명하며 시민들의 ‘응원봉’이 민주주의를 지켰다고 회고하는 모습은, 격동의 시간을 넘어선 국내적 자부심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 속에서,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한국의 지정학적 위상과 국가 신인도에 대한 중대한 스트레스 테스트였다.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사건이 남긴 국제적 파장과 교훈을 냉정하게 복기해야 한다.

사건 발생 직후, 워싱턴과 베이징, 도쿄의 정책 결정자들은 서울에서 타전된 긴급 뉴스를 숨죽여 지켜봤다. 특히 핵심 동맹국인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핵 위협이 상존하고 중국의 영향력이 팽창하는 동북아시아의 심장부에서 발생한 예측 불가능한 정치적 변수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미 국무부와 백악관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한국의 민주적 제도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 동맹의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한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였다. 권력의 공백이나 예측 불가능성은 동맹국과 적대국 모두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보낼 수 있으며, 이는 곧바로 한반도 전체의 안보 불안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과 북한은 이 사태를 다른 시각에서 관망했을 것이다. 베이징은 한국 내부의 정치적 균열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약한 고리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주의 체제가 가진 본질적 역동성을 ‘불안정성’으로 규정하며 자국의 체제 우월성을 선전해 온 중국에게, 한국의 계엄 사태는 더없이 좋은 소재였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다. 관영매체를 통해 ‘남조선 괴뢰 정권의 파멸적 발악’이라며 맹비난했지만, 그 이면에는 남한의 국론 분열과 지휘 체계의 혼란을 군사적 도발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지 예리하게 타진했을 것이다. 이는 한국의 내치가 곧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준 대목이다.

경제적 파장 역시 즉각적이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외국인 투자 자금이 일시적으로 유출되는 등, 시장은 정치적 리스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그 이후의 전개다. 불과 몇 시간 만에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되고, 군과 경찰이 헌법적 질서를 존중하며, 시민들이 성숙하게 저항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타전되면서 시장의 불안은 빠르게 진정되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위기 상황에서조차 헌법적 절차와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단기적 충격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국가 신뢰도를 방어해낸 셈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12·3 사태’는 1961년의 5·16 군사정변이나 1979년의 12·12 군사반란과 명백히 다른 궤적을 그렸다. 과거 군부의 총칼이 성공했던 시대와 달리, 2024년의 대한민국은 입법부의 단호한 저항, 사법부의 독립성, 그리고 무엇보다 ‘응원봉’으로 상징되는 시민사회의 성숙한 힘이 국가 시스템을 지탱했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이 이룩한 민주주의의 제도적, 문화적 심화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한때 군부 독재의 대명사였던 국가가 이제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는 모델로 비칠 수 있게 된 것이다.

1년이 흐른 지금, 세계는 여전히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 일시적인 혼란은 수습되었지만, 그 기저에 깔린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제사회는 한국이 이번 사태를 통해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보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치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수 있을지를 지켜보고 있다. 결국 한 국가의 가장 강력한 외교안보 자산은 굳건한 동맹이나 첨단 무기체계뿐만 아니라, 그 사회를 지탱하는 민주주의의 건강성과 성숙함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12·3 사태’는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진정한 국가적 자산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내부의 상처를 치유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 오지훈 ([email protected])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