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사태 1년, 광장의 성과와 시스템의 상흔

1년 전 대한민국은 헌정사상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를 맞았다. 국회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은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상징했다.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와 야당 지도부가 시민과 함께한 장면은 위기 극복의 상징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1년이 흐른 지금, 그날의 성과와 비용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광장의 열기는 식었고, 정치 시스템에 남겨진 균열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거국적 단결’은 필연적 선택이었다. 대통령의 헌정 질서 파괴 시도 앞에서 행정부와 입법부, 시민사회가 다른 목소리를 낼 여유는 없었다. 한 총리의 행진 참여는 내각의 국정 수습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대통령과의 정치적 결별을 공식화한 행위였다. 야권은 탄핵 정국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 일시적 연대는 위기 극복 이후 각자의 정치적 득실 계산으로 빠르게 전환됐다. 탄핵 이후 권력 공백기를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립은 그 증거다. 위기 앞에서 뭉쳤던 정치권이 위기 이후의 대한민국을 설계하는 데는 철저히 실패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치적 혼란의 대가는 즉각적이고 구체적이었다. 2024년 12월, 코스피 지수는 급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급등했다. 외국인 투자 자금의 이탈 조짐도 뚜렷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정치적 리스크’를 일제히 경고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경제 지표는 상당 부분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이는 임시방편적 재정 투입과 한국은행의 필사적 방어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근본적인 문제는 신뢰의 붕괴다. 국가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불신, 정치권에 대한 극도의 혐오, 그리고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분열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사회적 자본의 손실이다. 이 상흔은 단기적 경제 지표 회복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12월 사태와 이어진 탄핵은 대한민국 권력 구조의 지형을 바꿨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았다는 긍정적 평가가 존재한다. 반면, 국회가 비대해진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입법부의 권한은 강화됐지만, 책임성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거대 야당 중심의 입법 독주, 국정 난맥상에 대한 책임 공방은 지난 1년간 반복된 패턴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제약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가 운영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담보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국정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촛불로 상징되는 시민의 힘은 헌법 수호의 마지막 보루임을 증명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다. 그러나 광장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위기 상황에서의 직접 민주주의적 발현이 일상적인 정치 과정까지 대체해서는 안 된다.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의 복원과 정상 작동이 시급한 과제다. 정치권이 광장의 힘에만 의존하거나, 역으로 이를 두려워해 포퓰리즘에 편승하는 경향은 경계해야 한다. 제도의 틀 안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정치 본연의 기능 회복이 절실하다.

결론적으로 1년 전, 대한민국은 벼랑 끝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분명한 성과다. 그러나 위기 극복의 환호 뒤에는 값비싼 청구서가 남았다. 경제적 손실, 사회적 분열, 그리고 불안정한 권력 구조가 그것이다. 이제는 냉정해져야 할 시간이다. 광장의 열기를 넘어, 무너진 시스템을 재건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제2의 12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 1년 전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진정한 요구에 답하는 길이다.

— 박희정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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