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원 환율의 경고, ‘수입발 인플레이션’이 서민 경제를 잠식한다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 선을 다시금 위협하고 있다. 환율의 고공행진은 곧장 수입 물가 급등으로 이어져 가계의 장바구니를 덮쳤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따르면, 경유 가격은 전월 대비 10.1%, 수입 과일인 키위는 12.4%, 노르웨이산 고등어는 13.2% 급등하며 서민 경제의 주름을 깊게 하고 있다. 지표를 더 넓게 살펴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11월 전체 CPI 상승률은 3.8%로 집계되었으며, 이 중 석유류와 가공식품 등 수입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품목의 기여도가 1.5%p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물가 상승의 상당 부분이 외부 요인, 즉 고환율에서 비롯되었음을 시사한다. 미래 물가의 선행지표로 불리는 생산자물가지수(PPI) 역시 수입물가를 중심으로 6개월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는 원가 부담이 시차를 두고 최종 소비재 가격에 전가될 것임을 예고하는 명백한 신호다.

고환율 현상의 근본 원인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기조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킹달러’ 현상에서 찾아야 한다. 미 국채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글로벌 유동성이 안전자산인 달러로 집중되고, 이는 원화를 포함한 대부분 신흥국 통화의 약세를 유발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대외 환경 속에서 한국은행의 정책적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물가 안정과 환율 방어를 위해서는 기준금리 인상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20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 그리고 본격화되는 경기 둔화 가능성은 금리 인상의 발목을 잡는 족쇄다. 섣부른 금리 인상은 이자 부담을 증폭시켜 내수 시장을 급격히 냉각시키고, 취약계층의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러한 딜레마는 통화 당국의 고심을 깊게 만들고 있다.

산업계 역시 환율 충격파에 따라 희비가 명확히 엇갈리는 모습이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업계는 달러로 결제하는 유류비와 항공기 리스 비용이 급증하며 3분기 실적에 직격탄을 맞았다. 원재료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CJ제일제당, 롯데칠성 등 식품·음료업계 또한 원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하거나 고심 중이다. 이는 다시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반면,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 같은 수출 주력 기업들은 이론적으로 원화 약세로 인한 가격 경쟁력 확보와 환차익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에는 환율 효과가 약 1조 원가량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효과는 글로벌 경기 침체라는 더 큰 암초에 부딪혀 상쇄되고 있다.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과 유럽의 수요 위축으로 환율 효과만으로는 실적 개선을 낙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향후 한국 경제의 향방은 결국 외부 변수, 특히 미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에 달려있다. 시장의 시선은 다음 주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 집중되고 있다. 만약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하며 추가 긴축 시그널을 보낼 경우, 원·달러 환율은 1450원 선까지 상방이 열릴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수입 물가는 걷잡을 수 없이 치솟으며 4%대 물가 상승률이 고착화될 위험이 크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 연장과 일부 수입 품목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 등 단기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강달러라는 거대한 흐름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통화 당국의 외환시장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 역시 환율의 방향성을 바꾸기보다는 변동성을 완화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고환율발 인플레이션은 한국 경제의 취약한 고리인 높은 대외 의존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당분간 고물가·고금리 환경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기업은 원가 경쟁력 확보와 환리스크 관리에 주력하고, 가계는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며 유동성 확보에 나서는 등 보수적인 경제 운용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 박서영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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