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고위직 부패 스캔들, ‘신뢰의 위기’ 앞에 선 대한민국 공직사회를 향한 경종

규범과 원칙을 기반으로 한 국제 질서의 상징과도 같았던 유럽연합(EU)의 심장부에서 전직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부패 혐의로 구금된 사건은, 공직 사회의 청렴성이 얼마나 취약하면서도 동시에 시스템 유지에 필수적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결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넘길 사안이 아니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가장 중요한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삼는 대한민국 공직사회 전체가 스스로를 성찰하고, 현재 작동 중인 반부패 시스템의 허점을 면밀히 재점검해야 할 결정적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공직자의 부패는 단순한 개인의 도덕적 일탈을 넘어, 국가 시스템 전체의 근간을 뒤흔들고 국민적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키는 가장 파괴적인 위협 요인이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의 부패가 초래하는 해악의 범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광범위하고 심대하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국가 예산이 부적절하게 사용되거나 특정 이익 집단에 편중되어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킨다. 나아가 공정한 경쟁 환경을 왜곡함으로써 혁신과 성장의 동력을 저해하고, 성실한 경제 주체들에게 깊은 박탈감을 안겨 시장경제의 근간을 훼손한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폐해는 바로 ‘신뢰의 붕괴’다. 정부 정책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질 때, 사회는 극심한 갈등과 분열에 휩싸이며 어떠한 국가적 과제도 추진할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특히 이번 EU 사례처럼 외교·안보와 직결된 고위직의 부패는 국가의 대외 신인도를 실추시켜 국제 무대에서의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국가 안보에 돌이킬 수 없는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청렴의 문제가 단순한 윤리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존립과 직결된 핵심 가치임을 명백히 드러낸다.

물론 우리 공직사회는 과거의 뼈아픈 경험들을 교훈 삼아 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강력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시행,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출범, 그리고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재산등록 및 공개 제도는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각종 이권 개입 의혹과 교묘한 방식의 이해충돌 사례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법과 제도의 그물망이 아무리 촘촘하더라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의 의지와 조직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언제든 시스템은 와해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대통령실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하여 “현행 제도가 금융기법의 발달과 로비 방식의 지능화 등 새로운 형태의 부패를 효과적으로 따라잡고 있는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공직 경험을 통해 얻은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를 사적 이익 추구에 활용하는 퇴직 공직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내부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그의 발언은 제도의 외형적 완비를 넘어 실질적인 작동과 끊임없는 보완이 국정 운영의 핵심 과제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EU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기존의 반부패 정책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고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청렴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첫째, 임용 단계에서부터 부패의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고위 공직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 기준과 방식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재산 형성 과정의 투명성은 물론, 과거 공적·사적 활동 전반에 걸쳐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이해충돌 요소를 다각적으로 검증하는 심층적인 시스템이 요구된다. 둘째, ‘관피아’라는 고질적 병폐를 근절하기 위해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 심사를 대폭 강화하고, 로비 활동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제화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정책 결정 과정에 미치는 외부의 영향력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국민의 감시 아래에 둘 때, 비로소 정책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다. 셋째, 내부의 자정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공익 신고자에 대한 보호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부패 행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이 조직 문화로 확고히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처벌 강화와 함께 청렴을 공직의 가장 큰 영예로 여기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다”며 “리더 그룹의 솔선수범과 지속적인 윤리 교육을 통해, 청렴이 내재화된 유능한 행정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안정적인 국정 운영의 초석”이라고 그 정책적 방향성을 강조했다.

국가의 미래는 국민의 신뢰라는 토양 위에서만 꽃을 피울 수 있다. EU의 심장부에서 터져 나온 부패 스캔들은 우리에게 청렴이 더 이상 선택 가능한 미덕이 아닌,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생존의 문제임을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정부와 우리 공직사회 전체가 이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 국민의 눈높이에서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 혁신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죄어야 할 시점이다. 모든 국정 과제의 성공은 바로 이 신뢰의 회복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박지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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