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래빗홀’, 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 허무는 문화공연 실험

기업의 문화 마케팅이 단순 소비 촉진의 영역을 넘어 사회와 예술 현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다. 최근 진행된 버드와이저의 ‘더 래빗홀(THE RABBITHOLE)’이 그 대표적인 예일 수 있다. 본 공연은 서울 성수동에서 열렸으며, 그래피티 아트와 다양한 음악 장르를 결합함으로써 전통적인 공연 공간의 경계를 확장하려 했다.

버드와이저라는 글로벌 기업의 이름 아래, ‘컬처 크리에이터’ 라는 기치를 내세운 이번 행사는 외형적으로 일회성 기업 이벤트 이상의 문맥을 확보했다. 흔히 대기업이 주최하는 문화행사는 그 기획 단계에서부터 상업적 의도가 강조되고, 때로는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논란도 비껴가기 어렵다. 그런데 ‘더 래빗홀’의 현장에서는 이성과 감성이 교차하는 색다른 풍경이 연출됐다. 순도 높은 시각 예술인 그래피티와, 하드록·일렉트로닉·랩 등 다채롭게 구성된 라이브 공연이 한데 어우러지며, 관객들은 기업 로고의 집합이 아니라 동시대 청년 문화의 장 속에서 몰입했다는 후기가 눈에 띄었다.

이러한 시도는 최근 국내외 여러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 재생 프로그램, 예술 단체의 자발적 문화축제 등과 일정한 맥락을 공유한다. 그라피티의 경우, 한때 낙서와 범죄의 상징으로 취급받았으나 지금은 도시의 환기·해석·공공미술적 활용 등으로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23년 영국 런던의 ‘Tate Modern’ 미술관에서는 스트리트아트 전시회를 열었고, 일본 도쿄 역시 시부야 거리 중심으로 예술가들이 직접 시민, 기업과 협업하는 사례가 주목을 받았다.

또한 음악도 변화의 축을 담당한다. 힙합과 일렉트로닉, 록 등이 혼합된 ‘더 래빗홀’의 무대 편성은 장르 구분에 대한 고정관념 자체를 도전한다. 글로벌 대중음악 산업에서 이런 경향은 이미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2024년 미국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에서도 로컬 스트리트 아티스트와 DJ, 퍼포머가 실험적인 협업을 선보였고, 이 경험은 젊은 세대의 문화적 경계를 허물고 있다. 한국 역시 2023년 이후 각종 신진 뮤직 페스티벌(예: ‘서울패션위크’ 연계 음악 이벤트 등)에서 이질적 장르·예술의 결합 실험이 체계적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성수동을 택한 점도 의미깊다. 이 지역은 구도심 ‘공장지대’에서 2010년대 이후 급격한 변화로 트렌디한 카페, 팝업 전시, 신생 음악공연장, 창작 스튜디오가 다수 들어서 청년문화·문화혁신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이번 행사가 성수동 특유의 ‘코드’(혁신, DIY, 커뮤니티)와 만난 풍경은 일정한 도시문화적 시사점을 남긴다. 특히 버드와이저가 참여하는 방식이 기존의 단순 브랜드 마케팅이나 연예인 협찬 이상의 점진적 예술지원 및 새로운 커뮤니티 플랫폼 실험으로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물론 이 지점에서 상업적 스폰서십의 문화공간 장악이라는 오래된 비판도 여전히 유효하다. ‘더 래빗홀’이 진정성 있는 문화 실험이었는지, 아니면 세련된 브랜드 ‘홍보’의 또 다른 포장에 불과했는지는 앞으로도 꾸준히 회자될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확인된 점은 관객과 아티스트 사이에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운 교감이 형성되고, 브랜드가 배경으로 물러서려 한 노력이 감지됐다는 사실이다.

다수 음악 관계자는 이러한 흐름에 대해 “예술의 공공성이나 창의성만큼, 다양한 주체(기업, 예술인, 시민)가 만나는 중간지대가 많아지는 점이 현재 우리의 문화 생태계가 안고 있는 중요한 숙제”라고 강조한다. 회사의 자본, 예술가의 재능, 시민의 호기심이 결합해 새로운 문화 플랫폼이 만들어졌을 때 사회적 파급효과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그 전망은 과거처럼 단순히 비판과 옹호의 대립에 맡기기보다, 현장의 경험을 축적하며 방향성을 찾아야만 한다.

‘더 래빗홀’의 실험적 시도가 이후 우리 문화계 곳곳에 어떤 파장을 남길지, 그리고 기업과 예술이 그 접점에서 얼만큼 건강한 거버넌스와 신뢰를 쌓아갈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질문해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문화는 단절이 아니라 흐름과 연속성 속에서 그 힘을 발휘한다. 새로운 시도와 논의, 모두가 동참하는 장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 문화생태계를 고민하게 한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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