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의 한국 전략: 신차 러시와 구매허브 신설이 국내 산업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메르세데스-벤츠가 밝힌 “2년 내 40개 신차 출시”와 한국 내 “구매허브” 설립 계획은 단순한 신제품 마케팅이나 신규 조직 확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가 주도하는 이번 행보는 ①한국 시장의 위상 변화, ②글로벌 부품 구매체계의 진화, ③국내 자동차산업 밸류체인의 구조적 변동이라는 세 축에서 분석이 필요하다.

벤츠코리아가 2025년까지 40개에 달하는 신차를 출시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시장 규모에 비해 이례적이다. 보통 일본·중국 등 거대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제품 확대 전략이 한국에 적용된 배경에는 두 가지 요소가 짚인다. 우선, 국내 수입차 시장 성장세가 여전히 견조하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집계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기준 수입차 점유율은 전체 자동차 시장의 18% 선을 넘겼으며, 그 중 벤츠는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롤렉스 같은 생활 럭셔리에서 ‘합리적 프리미엄’으로 포지셔닝한 벤츠 특유의 전략이 고소득 소비자층을 끌어들이고, 동시에 전동화·커넥티드카 흐름에 민감한 3040 중산층 신규 고객까지 아우르고 있는 점이 주효했다. 신차 공세는 이들 고객 ‘풀’ 확대에 방점을 찍은 움직임이다.

제품 라인업만큼 중요한 것은 공급망 전략의 변화다. 벤츠가 “한국 구매허브설립”을 통해 글로벌 부품 조달의 중추 역할을 한국 지사에 맡기겠다고 밝힌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이는 단순히 한국 내 판매물량만 소비하는 구조에서 한 단계 진화해, 본사 차원의 핵심 R&D·구매 네트워크 일부를 아시아 허브로 확장한다는 의미다. 이는 두 가지 파급효과를 예고한다. 첫째, 국내 부품 중소·중견 기업의 벤츠 글로벌 밸류체인 편입이 상대적으로 용이해진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독일 본사 혹은 중국 제조기지 중심의 승인 시스템이 관행이었다면, 한국 구매허브는 기술력·납기·품질 우위를 가진 한국 부품 공급사의 글로벌 진출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이미 최근 현대모비스·만도 등이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신차 플랫폼 수주를 늘리고 있는 만큼, 벤츠의 구매조직 확대도 부품업계 지형 변화에 기폭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둘째, 국내 자동차산업 고도화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현재 국내 자동차 OEM(완성차)와 부품업체 간 관계는 내수·수출에 치중돼 있었으나, 수입업체의 구매기능 이관은 기술 내재화 및 해외성장 모멘텀을 동반할 여지가 있다. 단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도 존재한다. 국내 완성차 업체(현대·기아)와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간 부품 인재 쟁탈전, 기술유출 우려, 가격경쟁 심화 등은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이번 벤츠의 전략은 기업 경영적 관점에서 ‘채찍 효과(Bullwhip effect)’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팬데믹 이후 제조업 공급망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면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지역별로 견고한 구매 거점과 부품망 다변화를 강화해왔다. 벤츠 역시 독일과 중국 외에 주요 아시아 거점 확보를 위해 한국에 주목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 인도, 일본 대비 한국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품질 인프라, 2차 납품사까지 이어지는 서플라이체인 신뢰성, IT-전장 기술융합 역량 등이 주요 평가 포인트로 지목된다. 실제로 미래차 동력을 좌우할 배터리, 반도체, E/E아키텍처 시스템 분야에서 한국계 부품사(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현대오트론 등)의 글로벌 입지는 벤츠의 구매허브 결정을 뒷받침한다.

업계 초점은 이 전략이 단기 실적 및 브랜드 이미지 상승에만 그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느냐에 있다. 이미 BMW, 폭스바겐, 볼보 등 타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들도 소규모이긴 하나 아시아 R&D 거점, 부품조달조직을 한국에 두어왔고, 내연기관→전동화 패러다임 전환에 따라 한국의 부품·IT 경쟁력이 더욱 부각되는 추세다. 관건은 엑세스 권한, 기술거래 투명성, 파트너십의 실질 지속성에 달렸다. 벤츠의 구매허브가 단순 조달창구에 머무르지 않고, R&D 협업 및 차세대 모빌리티 신사업 연계 등으로 확대될 경우, 산업 측면의 파괴력이 커질 수 있다.

한편, 전기차·자동차반도체 등 미래차 핵심 부품 분야의 국내 경쟁우위가 단기적인 ‘공급망 긍정 효과’로만 해석될 수는 없다. 이미 글로벌 OEM들이 각국 보호무역, 자국 우선주의 및 지정학적 리스크 완충 차원에서 공급망 블록화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벤츠의 한국 구매허브 역시 글로벌 정치·경제 환경 변화에 따라 유연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동시에, 주요 부품업체들의 “글로벌 원소싱” 경험치 확장과 더불어, 공급망 위기 대응 역량 제고 차원에서 정부, 산업계의 선제 대응이 요구된다.

결국 벤츠코리아의 대규모 신차 출시와 구매허브 신설은 단일 기업 차원의 사업확장 전략 이상이다. 한국 시장이 더 이상 단순한 수입차 소비처가 아니라, 아시아 지역 글로벌 밸류체인의 엔진으로 재정의되는 전환점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시사점이 있다. 자동차산업 구조·거버넌스 변화, 전동화/스마트 모빌리티 전환의 패러다임 대응, 한국 부품업계의 글로벌 지형 변화 등, 본격적인 산업 혁신의 기로 한복판에서 업계는 벤츠의 다음 스텝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 서하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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