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기억을 넘어 시대를 건너: 베스트셀러 1위가 의미하는 것
도서 판매량이라는 데이터가 가지는 힘은 단순한 인기의 척도를 넘어 그 시대의 정서와 사회적 목마름까지 투영한다. 올해 ‘소년이 온다’가 2년 연속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는 KBS의 보도(2025년 12월 4일자) 역시 그런 맥락에서 깊은 의미를 찾게 된다. 한강의 이 소설은 이미 국내외에서 수많은 비평적, 독자적 찬사를 받아왔지만, 그 지속적인 호명은 단순한 화제나 수상 실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판매량이 증명하는 이 소설의 저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의 5월을 소재로 삼지만, 신파나 도식적 역사소설의 틀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강 특유의 감각적이면서 절제된 문체, 어린 소년 ‘동호’의 시점, 그리고 목격자·생존자·죽은 자까지 다층화된 내러티브는 아픔의 시간조차 아름다운 슬픔으로 승화시키며 독자에게 조용하지만 강렬한 울림을 준다. 바로 이 지점, 독자들이 오랜 세월 무게를 달고 다시 이 책으로 마음이 이끌린다. 한강이 환기하는 ‘기억’은 집단적 망각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상처의 치유기도 하다.
최근 몇 년 사이 각종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봐도, 특히 사회적 혼돈, 팬데믹,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논의가 잦아질 때마다 ‘소년이 온다’ ― 혹은 유사한 소재의 기록들이 다시금 조명되어 왔다. [참고: 교보문고 ‘올해의 책’, 2024-2025년 독서 트렌드 분석 등] 단순히 80년대 민주항쟁의 산물로만 접근할 대상이 아니라, 불안한 오늘을 살아가는 세대의 위로이자 질문이 되어버렸다. 인터뷰와 서평(‘한강의 품, 소년의 눈물’, 조선일보; ‘기억의 문장, 저항의 언어’, 한겨레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포착되는 감상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 닫히지 않는 상처”다. 잊혀져가는 역사의 자리에서, 한강은 슬픔을 개인의 몫으로 온전히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슬픔이 공동체의 책임임을,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용기로 기억과 마주하길 요청한다.
문학이 담보할 수 있는 사회적 기능은 영화, 드라마 등 시각적 매체가 줄 수 없는 ‘내면의 발화’를 가능케 한다는 데 있다. 특히 한강의 경우, 화면밖의 침묵을 충만한 감각으로 전환시키며, 작품 속 인물의 통증을 따라가던 이들이 독자로서 느끼는 교감의 농도가 유달리 진하다. 이는 영화화 논의나 무대극 각색 등 후속 매체 확대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권의 기록’이라는 키워드가 살아있는 이 작품을 두고 배우와 감독, 나아가 평론가들이 꾸준히 언급하는 ‘심연의 응시’라는 평가 역시 그런 점에 닿아 있다.
경쟁작들의 성향을 훑어보면 뚜렷한 대비가 나온다. 올 한 해 판매량이 급증한 자기계발서, 경제경영서, 트렌드서와 달리, ‘소년이 온다’는 예외적으로 정적이면서도 무겁고, 사회적 질문을 벗 삼는다. 이런 기류는 일본, 대만, 영미권 등 국제 문학 시장에서도 비슷하다. 노벨상 수상 작가들의 문학성, 젊은 여성 작가들의 사회참여적 서사, 여기에 한강의 이름이 굳건하게 더해진다. 실제 2024~2025년 일본 오리콘 차트, 미국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논픽션 부문에서도 유사한 논픽션, 페미니즘, 인권 기록물이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독자와 책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온라인 북클럽, 유튜브 북콘서트, 독립서점 큐레이션 등 다양한 접점이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을 보다 심층적으로 재발견하게 만든다. OTT를 통한 영상화 시도나 각종 비대면 북토크 등은 80년 광주의 생존자 증언이 아닌, 동시대의 ‘우리 이야기’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 책이 여전히 젊은 층과 중년, 심지어 이전 세대에게도 널리 읽힌다는 통계(교보문고, 알라딘 등) 역시 문학적 역동성을 증명한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소년이 온다’가 던지는 의미를 단순한 소비재 성공으로 치환하기는 어렵다. 문학의 반복적인 소환, 집단적 기억의 집요한 복원이 한강 소설에서 어째서 더 무겁게 다가오는지, 우리는 ‘기억의 힘’이 가진 치유와 저항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거듭되는 베스트셀러 1위 기록이 알려주는 것은 추모와 용서, 치유만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과거와 함께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이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