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정치 대결, 무산이 남긴 e스포츠와 사회의 교차점
올해 연말, 국회 의사당에서 펼쳐질 뻔했던 ‘스타크래프트’ 여야 대결 이벤트가 막판 제동에 걸렸다. 스타크래프트는 단순 게임 이상, 한국 e스포츠 1세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이 이벤트가 갖는 실질적 메시지와, 정치적 파장이 교차된 이번 상황을 해부해본다.
중앙일보 등 여러 보도에 따르면, 국회의원 스타크래프트 대전은 여야 모두 실질적 준비까지 들어갔으나, 여당 강성 지지층의 거센 반발과 내부 의견 조정 실패로 무산됐다. 처음 구상은 한국 정치의 탁상공론을 깨고 MZ세대와 소통, 정치의 친근감 제고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었지만 실제론 ‘정치쇼’ 논란과 동시에, 강경 팬덤의 저지선에 걸렸다. 플레이어가 아니라 팬덤이 게임판의 룰을 움직인 결과.
스타크래프트는 사실상 한국 e스포츠의 근간이다. 2000년대 초반 프로리그, PC방 신화, 윤종신 ‘팬클럽’이 동시에 돌풍을 일으키며 대한민국 남성들의 성장배경을 장악했다. 현역 정치인 상당수도 이 문화권에 속해 있다. 이번 이벤트는 국회의원도 국민과 같은 게이머, 사건 사고 스포츠와 똑같이 패턴과 전략의 ‘판’을 오가는 존재임을 알릴 기회였다.
하지만, 여당 핵심 지지층에서 ‘여야 화합 프레임’에 대한 거부 반응과 ‘정치 희화화’ 우려가 SNS에서 급격히 확산됐다. 스타크래프트의 핵심 메타는 ‘상성’과 ‘밸런스’인데, 이번 불참 사태 역시 사회정치적 메타에서 점점 더 극단화되는 ‘밸런스 붕괴’로 비칠 수밖에 없다. 국회가 e스포츠처럼 새로운 체제·규칙 실험에 나설 수 없는 까닭은 언제나 정치적 리스크와 ‘충성도’ 리터러시 때문이다.
같은 시기, 미국 하원의원들은 다양한 e스포츠 행사를 실제 진행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정치와 게임이 교차하는 이벤트가 흥행을 거둔다. 이 차이는 무엇인가. e스포츠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새로운 사회 참여의 장임을 얼마나 사회가 인정하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e스포츠는 이미 전통 스포츠와 동등한 위치로 성장 중이고, 각종 ‘미디어 믹스’와 결합해 그 영향력을 확장 중이다. 하지만 한국은 정치와 게임, 둘 다 진지하게 접근할 줄 아는 두터운 기반을 아직 완전히 갖추지 못했다.
농구와 달리, e스포츠의 정치적 활용은 ‘참여’와 ‘공감대’ 형성이 정말 어렵다. 페이커(이상혁), 이영호 등 거물급 게이머의 최근 행보만 봐도, 팬덤의 영향력은 근본적으로 게임 메타를 바꿔놓고 있다. 국회 대결에서 쏟아진 비판도 비슷하다. 은근히 몰입감 넘치고 즉흥성, 판타지적 전투구조를 가진 게 e스포츠인데, 이걸 현안 대립의 연장선에서 바라본 순간 ‘밸런스 붕괴’가 시작된다.
한편, ‘스타크래프트 정치쇼’ 논란 탓에 국회의원의 대중적 친화력, 디지털 역량을 부각할 기회 자체가 사라진 점은 MZ 유권자의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이 이벤트의 본질은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국회가 대중 패러다임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느냐’였다. 반복되는 당내 갈등과 팬덤정치, 그리고 ‘스타’보다 ‘밸런스’를 중시한 정치 문법이 결국 이 이벤트조차 발목잡았다.
e스포츠와 정치, 농구와 사회 모두가 결국 ‘구성원의 참여’와 ‘밸런스’라는 메타 위에서 굴러간다. 오늘의 무산이 남긴 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한국 e스포츠 문화와 정치, 그리고 사회적 팬덤의 미래 메타가 이제 어디로 갈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정세진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