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의 불멸의 울림, 두 번째 봄을 건너다
문학의 계절이 도래했다. 도시는 12월의 서울처럼 황량한 바람에 스스로를 감추고 있지만, 책방 안에서는 한 권의 책이 작고 근원적인 목소리로 매해 우리를 부른다. 2025년 겨울, 다시 한 번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은 단순한 판매 기록의 수치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감각이 어떤 의미에서 반복되는지를 묻게 한다. 마치 누군가 시간을 휘어, 그해 5월의 거리로 우리를 다시 이끈 듯한 체온이다.
『소년이 온다』가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2014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참상과 슬픔, 살아남은 자들의 죄의식과 연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기념해야 했던 남겨진 자들의 비명이 고요한 문장에 스며 있었다. 이 책은 결코 위로만을 건네거나, 쉽게 눈을 감게 하지 않는다. 올해 들어 2년 연속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은 곧 현재의 독자들이 이 책의 서늘한 온도를 스스로 선택해 품고 있음을 방증한다. 단순한 회상도, 추억도 아닌 현실의 ‘공기’라는 것을, 다른 기사와 판매 데이터, 그리고 온라인 서점 평점과 리뷰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역사는 늘 시간을 떠도는 이야기이기에, 이 소년의 울음은 여전히 시대의 귀에 맴도는 것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연간 도서 판매 순위에 따르면, 『소년이 온다』는 전년 대비 12% 상승한 판매고를 올렸다. 주 구매층 역시 전 세대를 아우르며 20대와 40대가 골고루 분포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왜 하필 지금, 왜 이토록 반복적으로 이 책에 몰입하는가? 무엇이 ‘소년’을 다시 걷게 하는가?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것은 어쩌면 지난 한 해 동안 사회 곳곳에서 터졌던 ‘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작은 함성, 그리고 사회적 연대와 기억의 필요성에 대한 갈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젊은 세대 역시 과거 세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지금의 불안과 상실, 분노의 이름을 ‘소년’에게 빌려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교보문고와 알라딘 공식 집계, 그리고 SNS상의 북클럽과 독서모임에서 ‘공감’과 ‘자기반성’이라는 키워드는 또렷하게 반복된다.
문화를 담당해 온 이들의 시선으로 보면, 『소년이 온다』의 인기 이면에는 문학이 갖는 은유적 힘과 서사적인 완결성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준 것은 한때의 유행이나 감상적인 추억여행이 아니다. 소설 속 주인공 ‘동호’의 시선으로 그려진 광주의 골목길, 피투성이 어린 소년과 남겨진 이들의 목소리는 2025년의 한국 사회가 여전히 풀지 못한 질문들—진실의 가치, 국가폭력의 상흔,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삶의 의미—에 대한 처절한 응답이 된다. 거대한 비극 앞에 주저앉지 않고, 기억하고 말하는 용기. 문학은 날마다 경계 저편의 사소하고도 무거운 진실을 독자에게 조심스럽게 권한다.
『소년이 온다』를 둘러싼 담론은 올해도 여전히 확장되고 있다. 최근 5·18 기념재단과 여러 시민단체, 문학인들 역시 이 책이 역사의식 고취와 미래 세대 교육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니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회를 열었다. 단순히 ‘읽는 것’ 이상의, ‘공감하고 실천하는 기억’의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 굳이 특별한 해체나 해석 없이도, 누구라도 각자 인생의 어느 한자락에 광주의 ‘소년’을 얹어볼 수 있으리라. 전국의 학교, 도서관, 심지어 온라인 독서 플랫폼까지—이 소설은 오늘의 강연과 토론회, 그리고 5월이 아니어도 매일 울리는 SNS의 해시태그 속에서 반복적으로 호명된다.
이토록 오래 사랑받는 책이 시대마다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베스트셀러라는 언어에 오래 담기지 않는 흔한 도서들이 가볍고 재빠르게 사라지는 동안, 이 소년은 해마다 다르게 우리 곁을 걷는다. 사회의 집단 트라우마와 치유, 연대의 환기를 바라는 이들이 ‘소년이 온다’에 오래 머무르는 이유를 굳이 어려운 분석을 들이대지 않아도 모두가 안다. 부모와 자녀, 학생과 선생이, 심지어 서로 다른 이념과 경험을 지닌 이들조차 한강의 문장에 감동한다. ‘진실의 무게를 견디는 일’이야말로 살아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이 책은 조용히 속삭인다.
이번 겨울, 소년의 울음은 어느 때보다 섬세한 결로, 그 어느 해보다 폭넓게 우리 마음을 맴돈다. 유행하는 트렌드도, 떠들썩한 이슈도 아닌, 누군가의 긴 숨결처럼 밀려오는 할 말을 가진 책. ‘소년이 온다’가 반복해서 정상에 오르는 현상은 수치 너머의 슬픔, 그리고 기대일 것이다. 이 소설이 몇 년이고 한결같은 선율로 다시금 판매 랭킹을 장식할 때마다 우리 모두는 실은 작은 증인들이다. 그 울음에 아직 답하지 못한, 그렇지만 아직도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 기억한다는 것, 위로 없이도 나아가는 것, 그 모든 슬픔의 감각을 오늘 이 겨울에도 우리는 읽고 있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