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작은 시네마, 공동체의 온기로 다시 피어나다 — 완주군 농한기영화제의 의미와 미래

겨울이 스며든 전북 완주군, 한 해 농사를 마친 손길이 극장 문을 연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한 ‘완주군 농한기영화제’가 5일, 누군가의 수고와 꿈이 쌓인 작은 마을회관에서 베일을 벗었다. 이 축제의 시작점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농민들과 지역 주민들,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몇몇 기획자들이 모여 ‘우리가 직접 만드는 영화마을’을 상상한 것에서 비롯됐다. 바쁜 농번기와는 달리 비교적 한가한 농한기, 잠깐의 여유와 적막을 지역 문화와 교류의 시간으로 이끌려는 시도가 결국 결실을 맺은 셈이다.

이번 행사는 농민 주도적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눈에 띈다. 완주문화재단, 지역 사회단체, 그리고 주민들이 협력해 기획부터 진행까지 손수 만들어낸다는 것은 도시의 상업 축제와 확연히 구별되는 부분이다. 특히 올해는 단편·장편 30여 편의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마을 삶을 담아낸 아마추어 창작 영화, 작가나 감독이 직접 지역민들과 소규모 토크를 나누는 프로그램, 그리고 농촌생활을 테마로 한 워크숍 등이 준비됐다. 대형 스크린이 필요 없는, 마을 회관 벽면에 펼쳐진 흑백영화 속 장면들이 이웃의 일상 이야기를 품에 안는다.

최근 몇 년간, 지역경제 침체와 인구 유출에 시달린 농촌마을들이 ‘작은 영화제’ ‘마을 상영회’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는 흐름은 전국적으로 포착된다. 기자가 취재한 다른 사례에서는 강원도 정선의 ‘짜장면 필름페스티벌’, 경남 남해의 ‘바닷가 작은영화제’처럼 주민이 직접 큐레이션하고 기획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자생적인 영화문화 진흥은 관객수 확보라는 상업 논리를 떠나 공동체 결속과 문화 갈증 해소라는 원초적 목표에 천착한다. 완주군 영화제 역시 이와 맞닿아 지역 어르신들에게는 젊은 감독과의 대화가 새로운 세상과의 조우가 되고, 영상예술에 목마른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의 꿈을 상상해보는 축제의 장이 된다.

이 현상은 산업적 측면에서 단순히 ‘농촌문화 활성화’의 의미를 넘어, OTT 중심 소비 구조와 스크린 산업의 변화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자 대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수많은 영상 콘텐츠가 모바일과 집안 거실에서 소비되는 시대,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경험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문화행위가 된다.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온기와 공감, 그리고 직접 담론을 나누는 현장이 남는 곳이 바로 이런 로컬 시네마들이기 때문이다. 익명의 관객이 아니라, ‘김영식 씨네 옆자리’에서 영화를 보고, 그를 다음 날 시장통에서 다시 마주치며 논평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이 소박함이 소도시·농촌영화제의 진짜 가치다.

물론,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인력·예산·장비 등 모든 면에서 대도시 영화제에 비해 열악함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콘텐츠 수급 측면에서 속칭 ‘극장 개봉 실패작’이나 OTT의 소외작이 다수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마저도 완주군 영화제의 기획 의도에서는 소외계층, 소외작품, 소외된 장르와 세대에 대한 포용의 의지로 승화된다. 스크린 산업 논리를 벗어나, 지역이 스스로 자생력을 갖고 콘텐츠를 발굴해내는 새로운 순환구조가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창조적 시도가 점차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 지역 마을 대표가 영화를 선별하고, 초청 감독을 직접 만나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문화 리더십’은 지역주민의 주인의식을 높인다. 지역사회가 직접 만들어내는 문화적 실천의 힘이란 무엇인지, 완주군 농한기 영화제가 다시 한번 우리에게 그 가능성을 묻고 있다. 영화라는 매개가 지역을 연대하게 만들고, 좀 더 느리고, 좀 더 따뜻하게, 일상의 틈을 채워주는 과정이야말로 작은 영화제가 남기는 가장 아름다운 잔상이다. 내년 이맘때, 완주처럼 또 다른 마을의 극장문도 한 채, 두 채, 조용히 열릴 것을 기대해본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