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10주 연속 1위… 독자의 욕망과 시대의 불안이 동행하는 길목에서
책방의 온도는 언제나 빠르다. 다방면의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드는 시대, 무수한 책들 사이에서 무엇이 독자의 손에 오래 머무는지 살핀다는 건 문화부 영화·드라마 담당 기자로서도 유의미한 일이다. 이번 주 베스트셀러 1위를 10주 연속 수성한 ‘트렌드 코리아 2025’의 뉴스는 책 시장이, 나아가 사회가 던지는 신호와 깊이 닮아 있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는 어느새 연말이면 익숙하게 마주치는 풍경이 되었지만, 올해는 ‘10주 연속’이라는 기록이 특별히 눈길을 끈다. 애초 예측서를 매년 챙기는 일부 독자만의 영역이었던 이 시리즈가 대중적 ‘필독서’로 자리잡은 배경엔 변화하는 시대의 불안, 그리고 새로운 동향을 미리 아는 것에 대한 집단적인 욕망이 공존한다.
‘트렌드 코리아’의 이 같은 강세는 숫자적 결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연합뉴스 보도와 더불어 교보문고 등 주요 온라인 서점 집계까지 참고해보면, 경제 불확실성과 AI 등 신기술의 급부상, 팬데믹 이후 가치관 재편이라는 복합적 맥락이 올해 판매량을 견인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베스트셀러 차트에서 자기계발이나 경제서를 앞세운 흐름이 무거워졌으나, 올해만큼 예측서에 몰리는 관심은 보기 드물다. 이는 미래를 통제하려는 욕망, 혹은 흐름을 놓치는 데 대한 두려움이 그만큼 커졌음을 방증한다.
이른바 ‘트렌드 리터러시’는 이제 기업가나 마케터, 사회초년생뿐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필수 덕목이 됐다. 다양한 기사들을 종합해 분석해보면 ‘트렌드 코리아’의 핵심 독자층은 2030 세대부터 4050까지 폭넓게 확장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인공지능,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젠더 이슈 등 변화 속도를 예민하게 체감하는 이들에게 신뢰받는 나침반 구실을 했다. 문화 현상이나 스크린 산업에서도 ‘변화 예측’과 ‘데이터 분석’이 점점 더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는 점을 떠올리면, 이런 흐름은 단지 출판계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영화계에서도 시즌별 흥행 공식이나 관객 심리 변동, OTT 트렌드 분석에 집착한다. 책을 통해 외부 키워드를 미리 읽는 욕구, 그리고 그 확신이 다시 스스로를 지탱하게 만드는 선순환의 구조가 포착된다.
또 주목할 대목은 소설 분야의 약진이다. 올해 들어 ‘불안한 사회 속에서 이야기, 즉 서사가 지닌 치유적 힘이 다시금 조명’ 받고 있다. 연합뉴스 기사 외에도 서울경제 등 여러 매체가 소설 분야의 판매 상승률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실제로 2024년 하반기 검색량이 급증한 장르 소설, 에세이, 인문학적 서적들은 팬데믹으로 인한 위로, 자기이해 같은 내면적 요구와 맞닿아 있다. 일종의 도피적 성격이 강했던 이전과 달리, 최근 소설 독서 양상은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적극적으로 찾고 사유하는 쪽으로 이동 중이다. 문학이 제공하는 정서와 힐링,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회를 입체적으로 해석하는 ‘이야기의 힘’이 다시 독자를 부르고 있다.
감독과 배우의 세계를 해석하던 내 시선으로 책 시장의 메시지 전환을 들여다보면, 이 변화는 ‘현실 직시와 사유’로 수렴된다. 많은 독자들이 ‘트렌드 코리아’에서 얻는 건 무턱대고 따라할 팁이 아니다. 도리어 복잡하게 얽힌 사회, 신기술, 인간관계 속 내 위치를 환기시키는 ‘나침반’ 그 자체다. 영화에서 감독이 큰 그림을 그리고 배우가 그 변주를 만들어내듯, 책이 그리고 독자가 해석해내는 메시지는 시대와 정서를 함께 돌아보게 한다. 개별적인 정보 소비를 넘어, 내가 발견한 변화의 조짐을 주변과 공유하고, 조금 더 넓은 시야로 내일을 예측하려는 욕망이 현시점 우리의 독서 풍경을 지배하는 셈이다.
소설의 약진과 ‘트렌드 코리아’의 독주는 결코 대립적인 흐름이 아니다. 한쪽은 외부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다른 한쪽은 내면을 단단히 붙든다. 이 양측의 에너지는 결국 불확실한 미래를 앞둔 한국 독서계, 나아가 문화시장의 풍경을 결정짓는다. OTT와 극장가에서도, 어떤 이야기가 살아남을지를 가르는 기준이 늘 바뀌듯, 출판계 역시 트렌드와 내면의 서사가 만나야 새로운 바람을 만든다. 지금 책방에서 흐르는 ‘트렌드 코리아’와 소설의 이중주, 그 무형의 열기는 우리 사회의 불안과 응원의 온도차를 동시에 반영한다. 미래와 현재, 예측과 사유를 오가는 이 독서의 여정은, 2025년의 대한민국이 여전히 책이라는 무대를 통해 저마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음을 조용히 증명한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