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없는 연대: 고려인 난민 아동을 위한 민관 협력의 의미와 과제
국내 대표 화장품기업 아모레퍼시픽과 예사랑아동병원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국에 들어온 고려인 난민 아동의 건강과 교육 지원에 나섰다. 아모레퍼시픽 사회공헌재단과 예사랑아동병원은 ‘우크라이나 고려인 난민 자녀 건강·교육 지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역 내 고려인 난민 아동들에게 무료 건강 검진, 예방접종, 교육용 교재 제공, 심리상담 지원 등을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우크라이나 내전 이후 가족과 일상을 잃고 한국에 정착한 난민 아동의 실질적 건강 문제와 학습 결손, 심리적 외상을 함께 다루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아모레퍼시픽은 기본적인 후원금과 생필품, 위생용품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직접적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예사랑아동병원 측은 언어 소통이 충분하지 않은 난민 아동도 쉽게 진료받을 수 있도록 의료통역 서비스를 갖추었으며,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상담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이는 단순한 물적 지원을 넘어 ‘다문화 공존’이라는 더 깊은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모범적인 움직임이란 평가가 나온다.
최근 들어 재한 우크라이나 고려인 공동체 규모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이들의 복지와 교육 문제는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멀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공공의 지원은 대부분 긴급 생계 및 체류에 집중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아동·청소년 세대의 건강권과 교육권은 상대적으로 방치되어왔다. 한국 사회 내 소수자 아동 문제는 서류상 정착 이후에도 청년기와 성인기까지 ‘이중 경계’의 사각지대에 놓이곤 한다. 특히 언어 장벽, 문화적 소외, 학교 적응의 어려움, 심리적 충격 등 복합적 난제는 ‘복합 복지’라는 형태의 통합 지원 없이는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기존 언론에서 재한 고려인 아동의 건강·교육 문제를 집중 보도한 사례는 드물다. 하지만 지난 해 일부 지방정부와 비영리단체가 이들에게 집중한 바 있다. 예를 들어 경기도와 부산 등에서는 ‘난민 아동 심리 치료’, ‘다문화 통합 학습 지원’ 프로그램이 시범적으로 운영되었으나, 이 역시 예산과 전문 인력 부족 문제로 이어졌다. 사회문제로서 자리 잡기에는 체계적 정책 뒷받침과 지속적 민간 참여가 함께 요구된다. 이번 아모레퍼시픽과 예사랑아동병원의 사례는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고, 지역사회 내 실질적 통합을 도모하는 민관 협력의 긍정적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청년·아동 세대가 이끌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고려인 난민 아동의 건강권과 교육권 보장은 단순한 복지정책을 넘어선 중요한 사회적 투자다. 중도적 시각에서 볼 때, 기업의 사회공헌이 일회성 선행에 머물지 않고, 아동의 성장주기 전반에 걸친 지원으로 확장될 경우 사회 전체의 포용력과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단순한 구호활동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에 건강관리, 정신건강, 언어교육, 학교적응 등 아동 복지 전 영역에 대한 ‘다층적 지원 모델’이 필요하다.
또한 난민 아동 지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당사자 참여’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교육 시민단체와 대안학교 일부에서 난민 아동이 참여하는 자조집단, 동아리 활동 등이 조심스럽게 시작됐지만, 이들의 목소리가 정책 결정으로 이어진 사례는 아직 드물다. 지속가능한 복지, 실질적 통합을 위해선 당사자의 문화와 경험, 요구를 실제 반영하는 구조적 변화가 요구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려인 난민 아동 지원은 단순히 특정 소수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주민과의 공존·포용사회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중도 진보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아동에 대한 동등한 사회참여, 건강·교육 기회의 평등은 우리의 사회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다. 정치와 경제, 복지 영역의 경계를 넘어 민간과 공공, 지역사회가 함께 만드는 ‘사회적 연대’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캠페인과 뉴스로 소비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으로 구체화되고 시스템화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앞으로도 기업, 병원, 공공기관, 교육 현장이 긴밀하게 협력하여 더 많은 난민 아동이 안전한 환경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촘촘한 지원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 강지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