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전문성과 공감의 경계를 잇는 글쓰기의 힘

충남 보령시가 12월 6일 ‘제21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2004년 제정이래 20년 넘게 이어진 이 상은 의료 현장에서 마주하는 삶의 단면과 의미, 그리고 의사의 시각으로 사회를 조명하는 글을 발굴해왔다. 올해 역시 전국 각지에서 의료인들이 출품한 수필 가운데 최종 수상자가 선정되었고, 시상식 현장에는 보령시 주요 인사, 의료계 관계자, 문학계 인사들이 한데 모여 의료와 문학의 접점에서 일궈낸 공감과 성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의사수필은 의료진이 환자와 나누는 진솔한 경험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감정노동자의 내면과 타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단순한 의학적 사실 전달을 넘어 삶의 희로애락,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맞닥뜨리는 인간성 회복의 순간들을 마주한다. 올 한 해 수상작들 역시 환자 중심의 돌봄, 의료 현장에서 겪는 윤리적·정서적 갈등, 그리고 지역사회와 병원이 맺는 관계 등을 테마로 삼아 보건의료 현장의 풍경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보령의사수필문학상은 지역 문화 진흥의 일환이면서도 시대적 의미를 품고 있다. 의사라는 직업의 무게만큼 ‘치유하는 언어’에 대한 시대적 갈증이 커진 2010년대 이후, 코로나19를 거치며 ‘의료인 서사’에 사회적 관심이 이례적으로 높아졌다. 특히 진료실 바깥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문학적 언어는, 대중이 갖는 의료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고, 인간적 신뢰의 회복에 디딤돌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의료인의 글쓰기는 환자와의 소통은 물론 동료간 공감 능력을 배양하는 데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관련 행사들을 보면, 보령의사수필문학상은 단순한 ‘문학상’의 격식에 머물지 않는다. 전국 각지의 의료인들이 수상을 계기로 지역 문인협회와 책 출간, 청소년 대상 특강 등으로 활동폭을 넓히는 추세다. 여러 수상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담은 짧은 산문집이나 옴니버스 에세이 형태의 도서를 출간하며, 대중과 의료계 모두의 입장에서 시선을 확장한다. 이는 곧 의료계의 집단적 목소리이자 세대 간 대화의 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의료문학의 유구한 전통과도 연결된다. 최근 10년간 ‘한국의사수필문학회’와 각 지역 의사회 등에서 의사들이 참여한 수필집, 전문의 인터뷰, 의료인 시(詩)모음집 등이 다수 출간되어 왔다. 사회 전반에는 여전히 높은 의료 불신과 갈등, 환자-의사간 소통 부재 문제가 뿌리깊게 남아 있다. 그럼에도 직접 환자와 마주하는 현장에서 축적된 이야기가 공적인 무대에서 전달될 때, 시민들은 미디어를 넘어 일상의 언어로 의료인과 다시 소통할 기회를 얻게 된다.

예를 들어, 2023년 수상자인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말기암 환자와 가족의 짧은 대화 장면을 통해 ‘죽음 이전의 존엄’을 기록했다. 이는 대중적 감정 자극이나 선정적 묘사보다, 환자 개개인이 가진 사연을 의료인의 입장에서 차분하게 풀어냄으로써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어떤 글은 응급실의 버거운 일상에서 잠시 스치는 동료 간 공감의 순간을 포착한다. 반면, 한 야간당직 의사는 자신이 겪은 의료적 실수와, 그 뒤에 찾아온 심리적 외상 및 자책감을 고백하며 의료인의 ‘약함’을 직시한다. 이는 단순히 영웅적 이미지나 전문성 강조를 넘어서, 인간적 연민과 자성의 태도를 드러낸다.

이런 사람 중심의 문학현상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의사-환자간 신뢰의 회복’이라는 사회적 과제와도 밀접히 맞닿아 있다. 성급한 영웅 만들기에서 벗어나 각자의 자리에서 흘리는 땀, 주저와 책임, 소명의식이 글로 치환될 때, 의료현장의 실체와 한계 역시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점이야말로 의료문학상 제정이 갖는 가장 큰 의의라 할 수 있다.

한편, 최근 보건복지부와 지방정부들이 의사들의 의사소통·공감 역량 강화를 중점 정책과제로 꼽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인문학 기반 글쓰기가 의료사회의 집단적 감정 근육을 강화하고 환자 중심 진료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 진단한다. 한국의사수필문학회 김석만 회장은 “수필문학은 진료실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공명하게 해주는 공동의 언어”라면서, 그 가능성에 주목했다. 실제 현장에서도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장려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보령의 모 의료법인에서는 ‘의료인 에세이 데이’를 따로 운영하며, 의료진의 자발적 이야기 나누기가 자연스러운 조직문화를 촉진하는 사례도 소개된다.

물론 과제도 많다. 의학의 객관성과 인간적인 감정 사이 균형, 수필 선정 과정의 투명성, 각기 다른 의학분야 간 목소리의 비중 등은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더불어, 일반인 독자의 공감을 이끌기 위해 에세이 외에 다양한 장르, 매체 연계를 시도하거나 독자 피드백을 적극 반영하는 방식도 고민할 단계다.

끝으로, 전문가의 일상에 감춰진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곧 전문성과 공감, 조직적 언어와 개인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공공의 건강, 사회적 연대가 중시되는 시대, 보령의사수필문학상은 사람 중심 사회로 가는 디딤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을 쓰는 의사의 목소리는 묵묵하지만, 그 파장은 적지 않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