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숨결로 태어난 무용극, 설산대지의 시적 울림과 오늘의 예술적 맥락
무대 위로 밝은 산사 자락이 사방의 공기를 가르며 퍼진다. 흰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은 은빛 설원이 내딛는 아침 햇살처럼 단정하고 절제된 동작을 풀어낸다. 2025년 12월, 중국 무용극 ‘설산대지(雪山大地)’가 한국 관객 앞에 서며 깊은 울림을 안겼다. 내외뉴스통신에 따르면, 이번 공연의 장면은 무대 자체가 자연이 되고 배우의 몸짓 하나하나가 실제 설원과 대지를 연상케 한다. 각각의 무용수들은 자신이 곧 자연을 품은 이방인임을 알리는 듯 온몸으로 새하얀 이야기를 썼다.
이 작품은 전통과 현대가 조우하는 접점에 서 있다. 눈부시게 희고 고요한 공간 위, 무용수들은 강인한 시대의 숨결, 땅 아래 잠든 이야기들을 춤으로 일군다. 눈서리 낀 산맥의 들숨에 몸을 실은 듯, 구체적인 내러티브를 앞세우기보다 풍경 자체가 압도적인 맥락이 되어버린다. 이번 ‘설산대지’는 중국 내에서도 인문·예술계에서 높게 평가받았으며, 관련 문화예술 전문 매체와 평론가들이 “신체의 청명한 언어, 소리로 번진 뉘앙스, 고요하지만 압도적인 감정”이라 평했다.
공연의 중심에는 중국 소수민족의 삶과 신화, 대지의 신성성에 대한 경외가 담겨 있다. 언어적 설명을 최대한 배제한 채 오로지 움직임과 무대 미술, 음악 그리고 조명으로만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처연하고 때론 격정적으로 분출되는 몸짓, 배우의 표정 안에 침묵이 흐르고, 배경을 이루는 LED 프로젝션은 단조로운 색채로 극적 분위기를 부각했다.
유사한 시기, 중국 전역에서 ‘자연’, ‘전통’, ‘민족서사’를 테마로 한 무용극 공모가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당대 중국의 대표 무용극 ‘붉은 여성군’, ‘요문서연(妖门书宴)’ 등 다양한 작품들이 최근 공연 예술계의 주요 화두로 급부상했다. 그 흐름 속에서 ‘설산대지’는 자연에 대한 원천적 경외와 개인·공동체의 정체성을 조명하며, 이국적이고 신선한 정서로 관객의 감각을 뒤흔든다.
이번 공연이 특별한 이유는 예술이 현실을 재현하는 도구를 넘어, 몸짓만으로 세계관을 창조해냈다는 데 있다. 현대 무용극 특유의 추상적 서사, 육체와 공간을 통해 그려지는 감각적 포용성, 그리고 음악과 조명의 미묘한 합주가 조화롭게 어울려 어떠한 대사보다 더 울림을 주었다. 현장에서는 드리운 조명 아래 배우의 손끝과 발끝이 허공에 남기는 여운이 커다란 환희처럼 번졌다.
공연 후 관객들이 남긴 반응 속에는 ‘눈동자와 뼈마디로 시작된 대지의 언어가, 익숙한 도시인의 일상에 낯선 설원을 심었다’는 찬사가 가득했다. 이는 최근 아시아 공연예술계가 거대 서사보다는 지역성과 자연, 신화적 이미지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음을 반영한다. 다른 매체의 평론 또한 “현대가 잊은 대지의 힘,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연결성”을 극찬했다.
한편, 이와 유사한 맥락으로 2024~2025년 동아시아 공연 씬에서는 생태적 상상력과 신체 중심성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일본의 ‘풍림화산(風林火山)’ 프로젝트, 한국의 ‘산의 시간’ 기획 등이 모두 자연·전통의 형태미와 지역 정체성 복원을 향한다. 무용극 ‘설산대지’는 이러한 흐름의 첨예한 지점에서, 대중성과 예술성 모두를 견인하며 세계관의 확장을 이끈다.
마지막으로, 무대라는 한계적 공간 안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가능함을 보여준 ‘설산대지’에 찬사를 보낸다. 대지와 설원, 그리고 그 언저리에서 피어나는 신화적 아우라가 우리가 잊어버린 생의 본질, 그리고 예술의 무한한 깊이를 환기시켰다. 문화예술이란 더 이상 단순한 오락이 아니며, 때로는 존재의 깊이를 일깨우는 설원의 숨결과도 같다. 우리 예술 씬에도 이러한 실험과 감각적 혁신의 꽃이 오래 피어나길 기대해 본다.
— 서아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