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들의 AGF ‘상복 인증’ 집단행동, 게임 문화와 정책 갈등의 경고음

2025년 AGF(Anime Game Festival) 현장. 검은 상복을 맞춰 입은 게이머들이 분향소를 차렸다. 그들이 헌화하고 침묵하며 곳곳에 남긴 메시지는 명확했다.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 “게임을 영상물 등급심의 대상으로 분류하는 기조”에 대한 집단적 애도의 의사표현이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상복 시위는 게이머 집단 전체의 위기감, 그리고 과잉 규제 및 사회적 낙인에 대한 반감의 선명한 신호탄이 됐다.

행정적으로 정부와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정책 방향―특히 지난 2024년 단행된 심의 강화, SNK, 플래시백, 서브컬처 장르에 대한 규제 조치가 촉발한 게이머 커뮤니티의 위기감은 SNS, 디스코드, 오픈카톡 등에서 이미 빠르게 확산된 바 있다. 그러나 실질적 집단 행동, 즉 오프라인 대형 게임 축제인 AGF라는 공개무대에서 검은 상복과 분향소, 그리고 ‘R.I.P. 한국게임’이라는 해시태그 퍼포먼스가 현실화된 것은 이례적이다. 오타쿠, 게이머, 스트리머, 게임 크리에이터까지 참여 범위가 폭넓었다는 점은 이번 행동의 심각성과 상징성을 증폭시킨다.

실제 사건의 촉발점은 2024년 가을, 게임 심의 가이드라인 개정안 예고 때부터였다. 당시 정부 측은 청소년 보호, 불법 유해물 차단, 게임 산업 발전이란 3대 명분 아래 모든 디지털게임을 일률적으로 영상물 심의와 유사한 범주에 포함시켰다. 여기엔 팬게임, 2차 창작게임, 개인개발 인디게임도 포함됐다. 문제는 한국의 게임 심의 방식이 일본, 유럽, 북미와는 다르게 검열 성격이 강하다는 점. 서버 이용권 박탈, 출시 금지, 스트리밍 및 2차 창작 차단 등, 1:1적, 직접적 제재로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이머들은 이 과정에서 자기정체성과 문화적 자유가 침해 받고 있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게임=불법 또는 폭력적”이란 이분법적 시각도 집단심리에 불을 붙인다.

기자는 수십개의 e스포츠, 게임 커뮤니티 모니터링 결과, 올해 상반기부터 ‘상복 인증샷’이 각종 게임 대회, 소모임, 스트리밍에서 확산되는 것을 감지했다. 하반기엔 아예 햄릿식 밈으로 변했다. 일부는 ‘추모 배너’ 형태로, 또 일부는 게임 내 장례모드·캐릭터 의상 커스텀 이벤트 등으로 이어졌다. AGF에선 이들이 집단적으로 실물 상복을 맞춰 입고, 제작비를 모아 ‘분향소’ 디오라마를 전시하는 강도 높은 집단행동으로 발화한 것이다.

이런 패턴은 일본 도쿄게임쇼, 미국 PAX West 등 글로벌 게임 행사의 ‘자유·창작 존중’과 강하게 대비된다. 현장에서 만난 게이머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정책 입안자들은 장르맹이다. 인디, 팬게임, 창작 노력을 무시한다”, “게임을 규제 대상으로만 보면 산업성장도, 문화적 다양성도 없다” 등 날 선 비판이 연이어 나왔다. 실제 국내 게임 시장은 모바일과 온라인, 인디와 서브컬처계의 활기―그리고 그들이 창조하는 각종 팬 콘텐츠의 선순환 생태계에 힘입어 성장해왔다. 심의 강화로 가장 타격을 입는 쪽도 이들이다. 심지어 뉴진스, 르세라핌 등 인기 아이돌도 자신들이 플레이한 게임이 법적 제재 대상인지 묻고, 일부 게임 스트리머는 “한국에선 위험하다”며 일본 서버로 이주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관점은 패턴 변화에 있다. 2010년대 초반, 확률형 아이템 이슈와 게임 셧다운제, 2020년대 초반 NFT·웹3 게임 논란 등 정책·이슈는 늘 게이머 커뮤니티를 뜨겁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때는 여전히 이슈와 일상이 구분됐다. 이번 ‘상복 집단행동’은 게이머 문화 정체성과 게임산업 전체에 대한 체감 위기감이 일상화됐을 때 어떤 행동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MZ세대 게이머는 정서적으로도 ‘공동체적 집행’을 선호한다. 밈과 SNS, 인증샷, 해시태그 캠페인에서 이제는 오프라인 축제 집회—심지어 장례문화까지—로 행동반경이 넓어진 것이다.

비판의 날은 단지 규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일부 업계 주류사, 혹은 인플루언서들이 수동적으로 관망하거나, 정부 논리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집단불신은 배가 된다. 실제로 AGF장 현장에서 인터뷰한 한 인디게임 제작자는 “정책 논의 테이블에 유저, 크리에이터, 스트리머가 빠질 때마다 우리 문화는 죽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게이머들이 유해물 취급당해선 미래가 없다. 게임이 문화라면, 정책논의의 당사자여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이번 AGF 상복 시위는 단기간의 해프닝이 아니다. 다양한 거버넌스에서 게임정책의 적정성, 창작자와 이용자의 권리, 그리고 산업과 문화의 경계 논의로 번질 조짐이다. 국내외 게임 행사와 문화정책, 플레이어 커뮤니티 등 패턴 변화의 지점에서 우리는 지금 ‘집단적 문화 행동주의’가 실시간으로 태동중임을 직시해야 한다. 어디선가는 시작됐던 작은 변화지만, 이번 AGF 축제에서 게이머들은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규제와 정책 기조에 반기(反旗)를 들었다. 떨쳐지지 않는 근원적 질문이 남는다. 앞으로의 ‘한국 게임’은 정책의 보호 아래 꽃필 것인가, 아니면 억눌린 채 스러질 것인가? 그런 점에서 2025년 연말 한국 게이머들의 집단 상복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이정표. 불씨는 이미 현실이 되었고, 행동 패턴은 다음 번혁명을 준비 중이다.

— 정세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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