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 입장 변화의 전략적 함의
2025년 12월, 미국과 중국이 각각 발표한 주요 안보 정책 문서에서 ‘한반도 비핵화’ 항목을 삭제하는 이례적인 조정이 이뤄졌다. 그동안 한반도 비핵화는 미중 양국 모두에게 전략적 공감대의 일환이자, 동북아 질서의 현상유지를 위한 국제적 규범으로 간주되어 왔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단순한 문구의 삭제를 넘어, 변화하는 국제정세와 동북아 역학 구도의 본격적인 재편 가능성을 예고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미국 국방부와 백악관의 최신 국가안보전략,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새로운 안보 보고서에서 모두 비핵화 문구가 빠졌다는 사실은, 단순한 실무적 누락이 아닌 정책적 전환임을 시사한다.
미국은 북한의 체제 안정 추구, 그리고 중국과의 전략 경쟁 심화에 따라 대북 정책의 현실적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와 그 뒤를 잇는 미국의 외교라인은 북한 핵능력의 동결, 관리 그리고 군비통제라는 현실적 접근에 더 많은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도널드 트럼프-김정은의 하노이 이후 명확히 감지된 미국 내 전략전환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반도 비핵화가 더 이상 미국 외교문서의 주요 슬로건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북한이 이미 핵보유국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음과 동시에 미국이 이제 ‘최소한의 안정화’ 또는 ‘억지력 관리’로 정책의 방점을 이동했음을 반영한다.
중국 역시 북한의 비핵화 언급을 뺀 점이 눈길을 끈다. 베이징은 최근 북·중 관계의 전략적 밀착, 미·중 전략 대결 국면에서의 자국 안보 우선시 기조, 남·북한 간 균형 외교 속에서 한반도 비핵화 주창에 따른 외교적 부담을 경계하고 있다. 미중 사이 힘의 대결이 첨예해질수록, 중국은 북한 체제의 안정을 자국 안보의 필수적 버퍼로 간주한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를 굳이 재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한반도 내 평화적 관리 및 북측 안보이익 보장을 언급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실제로 2024~2025년 중국 외교부의 공식 성명과 왕이 외교부장의 발언에서도 “비핵화” 대신 “평화, 안정, 대화”가 우선으로 등장하는 추세다.
비단 미중뿐 아니라 러시아, 일본, EU 등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국들도 각각 현실주의에 입각한 대북 접근법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서방 전략 속에서 북러 관계를 실질적 군사·경제공조로 격상했고, 일본 역시 북한의 핵위협을 삶의 안보문제로 인식하며 자위대 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즉, 과거 국제사회가 공유했던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프레임이 이미 와해됐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동시에 이번 조치는 한국의 전략적 입지와 외교적 선택지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한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공고하나, 미국의 실질적 비핵화 후퇴는 향후 한국 사회·정치권 내 전술핵 재배치, 독자 핵무장론, 혹은 확장억제의 실질적 신뢰에 대한 재조명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또한, 미중 경쟁이 장기화되는 한계 속에서 서울은 기존의 ‘비핵화 촉진자’에서 ‘안정 관리자’로 입장을 조정할 수밖에 없는 제약이 더욱 뚜렷해졌다.
한반도 문제는 지정학적 충돌과 현실적 이해관계의 함수로 작동한다. ‘비핵화’는 더 이상 국제 공조를 이끄는 강력한 외교어젠다가 아니라, 각국이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틈새에서 퇴조하고 있다. 북한의 내구성 있는 핵보유, 미중의 전략적 인식 변화, 러시아의 이해득실, 한일의 방위구상 등 복수 행위자들의 힘의 논리가 한반도 미래를 결정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의 정책 문서 변화는, 한반도를 둘러싼 핵문제가 당분간 냉혹한 현실주의 구도 속에 놓이게 됨을 선명히 보여준다.
이미 북핵 문제는 국제사회 ‘공통의 목표’에서 힘의 논리로 변질된 지 오래다. 한국 사회와 정책 결정자들은 이러한 외교적 추세에 냉정히 대응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이상적 담론은 각국의 ‘전략적 인내’와 ‘힘의 균형’ 속에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한반도 안보와 동북아 질서의 미래는, 명분이 아니라 변화된 힘의 구조와 현실적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 오지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