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의 계절이 담긴 한상, 절기 음식에 깃든 전통의 온기

초겨울의 문턱, 호남 평야의 들판엔 아직 이른 서리마저 곱게 내린다. 이때쯤 함평군 곳곳에선 어김없이 절기 음식의 향연이 시작된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함평군이 지역 주민들과 손잡고 절기 음식 문화 계승에 힘을 싣고 있다는 점이다. 기사에 따르면, 함평군은 나이든 이장들과 지역 식문화 계승자, 그리고 지역아동을 대상으로 전통 절기 음식 만들기 체험 행사를 지속적으로 열고 있단다. 각 마을회관, 체험장 등에서 열린 이 자리에는 추석 송편부터 동짓날 팥죽, 정월 대보름 오곡밥, 삼복더위의 삼계탕까지, 계절마다 한국인의 손끝에서 태어난 음식들이 차려진다. 그 절기 음식들에는 긴 겨울을 견디게 한 어머니의 마음과 함께, 토박이들의 오랜 지혜가 담겨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지 음식제조법만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는 대화의 장이자, 공동체적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시간이다. 현대의 식문화가 빠르게 서구화되고, 프랜차이즈 음식이 상차림을 점령하던 흐름 속에서, 함평의 절기 음식 행사는 시간의 결을 온전히 보존하려는 작은 울림이다. 같은 결에서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하여 ‘향토음식 자원화’ 사업을 전개한 사례,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펼쳐지는 전통음식 경연대회와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떠오른다. 여러 지역 신문과 정부 발표자료를 살펴보면, 경상도의 쇠머리국수 체험, 전라도 강진의 호박범벅 교육, 충북 괴산의 절임채소 전승 같은 시도가 여럿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회성 시연에서 그치기 쉬운 것을 함평처럼 일상 안의 문화로 정착시키는 사례는 드물다.

기억 속 어렴풋이 남아 있던 맛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체험. 절기 음식은 단순한 재료의 조합이 아니다. 먹고 남은 송편 한 조각도 가족의 안녕을 비는 손길이었고, 팥죽 냄비엔 액운을 막으려는 정성이 가득했다. 함평의 한 노인회관에서 열린 팥죽 나눔 행사에서는, 참가자들이 서로 젓가락질을 가르쳐주며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꺼내 놓았다고 한다. 그 뜨거운 팥죽을 한술 뜨며 새해의 무탈함을 기원하는 순간, 음식은 곧 공동체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 너머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다.

기사에서 강조하고 있는 함평군의 접근법은 교육적 측면에서도 인상적이다. 아이들에게 겉핥기 체험이 아닌, 오롯이 손으로 반죽을 빚고 재료를 고르는 방법까지 가르치는 이 프로그램들은, 어린 세대의 감각에 깊이 각인된다. 문화체육관광부 ‘전통문화 계승 및 진흥’ 정책 자료에 따르면, 전통음식 체험 참여 경험이 있는 청소년의 80% 이상이 “앞으로도 가족끼리 전통음식을 만들고 싶다”고 답했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이를 보면, 이러한 움직임이 결코 일과성 이벤트로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전통음식 계승의 맥락에서, 세계 각국의 슬로푸드 운동도 함께 비교해볼만하다. 이탈리아의 슬로푸드 크루즈는 각 지역의 빵, 치즈, 유제품과 관련된 전통제조법을 어린이와 젊은 층에게 적극적으로 전수한다. 일본의 정월 오세치요리 교육, 태국의 매운 고추장 소스 만들기 프로그램 등도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문화를 다시 삶에 불러오는 작업이다. 함평군의 사례가 더욱 빛나는 이유는 바로 이점에 있다. 구전으로 이어진 음식 이야기를 현대의 가족 식탁과 연결짓고, 지역공동체의 정체성까지 되살리려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소규모 농촌 지역의 고령화, 전통 식재료의 구하기 어려움, 농어촌 학교의 인력 부족 문제 등 다양한 난제가 버텨서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역사회, 교육기관, 행정이 유기적으로 맞닿아야 하며, 어쩌면 민간기업의 문화CSR과 연동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지원책이 고민되어야 한다. 전통음식이 지역관광의 훌륭한 소재임을 입증한 강릉 커피축제, 제주 보말죽 체험관광 등에서처럼, 절기 음식이 함평의 문화관광자원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여기에 있다.

결국 절기 음식은 우리가 언제나 정답처럼 되뇌는 ‘전통’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지역민의 삶과 감정의 흐름에 닿아있는 온기이다. 함평의 둘레길을 걷다 마을 어귀에서 느긋이 끓는 팥죽 냄비의 내음을 맡는 순간, 그곳의 계절과 사람들이 순하게 녹아든다. 토박이의 손 끝에 스며든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배우려 모여든 세대의 눈동자―그러니 절기 음식은 단순히 차려진 한끼가 아니라, 연대와 온기의 식탁임을 다시금 실감한다. 앞으로도 우리의 식탁에서, 그리고 우리의 일상 구석구석에서 이 소박한 전통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소망한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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