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반기별 실적보고’ 제안, 기업과 투자자에 미칠 파장
미국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최근 미국 기업들의 실적보고 주기를 현행 ‘분기별’에서 ‘반기별’로 전환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트럼프는 자신의 SNS 진영을 통해 “기업들이 1년에 네 번 실적을 보고하다보니 단기 실적에 급급하게 되고, 장기적 경영 전략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실제 재임 시절에도 이 문제를 언급한 바 있으며, 이번 발언은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기업 친화적인 메시지의 일환으로도 해석된다.
현재 미국 증시는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 등을 중심으로 모든 상장기업이 분기별로, 즉 1년에 네 번 실적을 공개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1930년대 증시 대폭락과 잇따른 회계부정 사건 이후 투자자 보호와 시장 투명성을 위해 도입됐던 체계다. 매 분기 기업들이 10-Q(분기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경영 실적, 재무상태, 기업 전략 등을 세세히 공개해야 한다. 예컨대 국내 종합주가지수(KOSPI) 상장사들도 분기마다 실적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삼성전자, 네이버 등 대기업들은 실적발표일에 맞춰 주가가 크게 출렁이는 사례도 흔하다. 트럼프의 제안이 실현될 경우, 기업들은 실적 발표 부담이 줄고, 투자자 정보 접근 주기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뜨거운 논쟁거리를 안긴다.
금융시장 참여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엇갈린 목소리가 나온다. 찬성론자들은 분기보고의 폐해로 ‘단기주의 만연’을 꼽는다. 예를 들어, 기업 임원들이 분기마다 무리한 실적챙기기용 비용절감·마케팅 강화에 매몰돼 중장기 연구개발이나 혁신 투자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기관 McKinsey와 CPPIB가 2017년 조사한 데이터에 따르면 장기 전략에 집중하는 기업일수록 수익률이 높고 고용 창출 효과도 컸다. 트럼프 제안의 의도 역시 이러한 기업생태계의 건강성을 강조하려는 데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면, 많은 투자자와 일부 규제기관은 ‘정보 비대칭 확대’ 우려를 제기한다. 분기마다 재무정보가 공개되니 주주들은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었다. 만약 반기 보고로 전환된다면, 6개월 동안 내부 정보를 가진 사람과 외부 투자자 사이 정보 격차가 심화할 수 있다. 회계 부정 리스크 역시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예컨대 2001년 엔론(Enron)과 같은 미국 대형 회계 스캔들의 재발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금융소비자원 관계자는 “실적 정보 공백기가 길어지면 소액주주·개인투자자 보호가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은행·핀테크 업계에서도 이번 논의가 주는 시사점은 크다. 분기별 실적공시는 핀테크 스타트업이나 네오뱅크(모바일 은행)와 같은 신생 기업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다. 막대한 자금력과 인력을 보유한 대형 은행과 달리, 중소 금융사는 짧은 보고 주기마다 발생하는 회계·감사 비용이 무겁게 작용한다. 실제 한국내 핀테크 업계 대표는 “국내도 미국 추세에 따라 분기별 실적공시제를 반기로 줄이는 논의가 시작되면, 혁신기업 투자 유치와 성장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실생활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삼성전자 주식’이나 ‘국내외 ETF’에 투자하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기업정보가 6개월에 한 번만 나온다면 투자 판단 기준이 불분명해질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ETF 내 주요 편입종목의 분기별 실적 데이터가 사라질 경우, 펀드 가치평가 과정에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 ‘금융투자소비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단순히 금융규제 완화 논리만으로 논의를 매듭지을 수 없을 듯하다.
이 사안은 결국 정보 접근성과 시장 공정성, 그리고 기업 혁신 촉진이라는 가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다. 금융시장의 장기적 건강성도 중요하지만, 소액주주를 비롯한 평범한 투자자들이 신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는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단기 실적경쟁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 대안을 고민하는 동시에,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 트럼프의 제안이 촉발한 논쟁이 미국을 넘어 국내 금융 규제제도에도 어떤 논리적 파장을 남길지,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 김유정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