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육아기본수당’ 실험, 우리 사회에 띄우는 작은 희망의 편지
강원도가 전국 최초로 만 8세 미만 아동을 둔 가정에 육아기본수당을 지급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최근 아동정책 평가에서 강원도가 우수 지방자치단체로 선정된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수많은 부모들의 ‘눈치밥’과 ‘불안의 저녁’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문화 가정의 김지현 씨(36)는 “애들 어린이집 끝나고 일을 더 하기도 부담스럽고, 집에서 보살피려면 수입을 포기해야 해서 늘 양쪽에서 죄책감을 느꼈다”며 지원책의 현실적 필요를 이야기했다. 실제로 2024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육아와 돌봄 부담이 실질적으로 가정경제와 부모 노동시장 참여를 크게 제한하고 있다. 강원도가 선택한 ‘기본수당’은 금전적 지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부모의 삶을 재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한 겹 더 보듬겠다는 신호다.
아동 정책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기존의 정부·지자체가 보편 혹은 선별적으로 아동수당을 도입해왔지만, 그 meisten이 학령기 이전(만 7세 이하) 혹은 취약계층 중심이었다. 강원도는 연령 기준을 만 8세 미만까지 높이고, 소득과 상관없이 모든 아동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한다. 이는 ‘아이 키우는 가정이면 누구든 필요하다’는 사람 중심의 시각에서 출발한 정책으로 해석된다. 복지의 보편성과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많은 젊은 부모들이 “육아가 곧 미래라는 말을 실감한다”고 호소하는 요즘, 강원도의 시도는 동시대 사회 분위기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정책의 뿌리는 강원도 사회의 구체적 현실에서 나온다. 강원도는 산간과 농촌, 도심이 공존하는 지역 특성상 돌봄 공백에 취약한 곳이 많다. 남편과 함께 미생물 농장을 운영하는 이은정(39) 씨는 “어린이집은 멀고, 부모님도 멀리 살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일손을 구하지 못해 항상 매출에도, 부부관계에도 그림자가 드리운다”고 털어놨다. 이런 환경에서는 1, 2만 원의 작은 지원도 가끔은 심리적 ‘안식처’로 작용한다. 전문가들은 강원도의 사례가 전국으로 확대된다면, 지역 단위 돌봄정책의 맞춤화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한편에선 지원이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현금 지급을 넘어 ‘돌봄 인프라’, ‘공공보육 활성화’ 같은 구조적 정책이 꼭 병행돼야 함을 지적한다. 포용적 복지로 나아가는 길에선 ‘따뜻함’만큼 ‘지속가능함’도 필수라는 이야기다.
이런 아동정책 실험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는 단지 액수의 문제가 아니다. 돌봄노동의 가치를 사회가 처음으로 제대로 인정하고, 부모를 ‘책임의 주체’에서 ‘공동양육의 동반자’로 변화시키는 첫 걸음이다. 이 같은 변화는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부모와 아이들의 표정, 목소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보호자인 조유정(42) 씨는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사회가 더 건강해질 것”이라며 새 정책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아동권리 옹호단체 관계자도 “지역격차가 심화되는 지금, 지방정부의 혁신성이 전국으로 확산될 기반이 마련됐다”며 정책의 방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편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서울, 경기 등 대도시는 인구밀도와 시설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지만, 돌봄 공백이나 부모 피로도는 결코 덜하지 않다. 실제 서울시는 2025년부터 영유아 가족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역 커뮤니티 지원을 확대한다고 밝혔고, 전라남도 역시 농어촌 맞춤형 돌봄서비스 예산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어느 지역이든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나 홀로의 싸움’이 아니라 지역과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몫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한계와 우려는 여전하다. 예산 확보가 숙제다. 강원도의 재정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점, 더욱이 앞으로 인구가 더 줄어들면 정책 유지에 적지 않은 부담이 예상된다. 보편성에 기반한 지원이 진짜 필요한 가정까지 제대로 도달하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울러 ‘단기 이벤트’로 소진되지 않고, 부모와 아이가 체감하는 생활 전반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공공보육’ ‘공공의료’ 등 인프라 확충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빼놓을 수 없다.
강원도의 작은 변화는 한국 사회 전체에 소중한 질문을 던진다. 아이 키우는 부모가 죄책감 없이 지치지 않고, 아이가 마음껏 뛰놀며 돌봄 받을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까. 육아정책은 정책 그 자체가 끝이 아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의 가치와 방향,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지 묻는 장치다. 오늘도 바쁜 하루를 살아내는 누군가에게, 강원도의 이 정책은 작은 희망의 편지이길 바란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