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대표회의의 내란재판부·법왜곡죄 반대, 헌정질서와 사법독립을 지키는 경계선
법관대표회의가 내란재판부 설치 및 법왜곡죄 신설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 8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회의에서 전국 법관대표들은 해당 입법 시도들이 헌법상 재판의 독립, 국민 기본권 보장에 심각한 침해를 야기한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지적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추진된 ‘내란·외환 사건 전담재판부 설치’와 ‘법왜곡죄 신설’ 법안에 대해 법관 사회 전체가 정면으로 문제를 삼은 모양새다.
이번 법관대표회의의 결정은 단순한 감정적 반발이 아니라, 국가 사법체계의 근본 원칙에 관한 이성적 경고다. 내란 등 특정 중대사건에 전담재판부를 둔다는 발상은, 실질적으로 특정 재판을 예단하거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사법부 구성을 조정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피해자 보호 혹은 중대 범죄의 효율적 단죄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헌법이 규정한 ‘법관의 독립’을 명쾌하게 위협한다. 일체의 재판이 정치적 힘에 통제당해선 안 된다는 대원칙, 이는 박정희·전두환 체제의 교훈이기도 하다. 역사가 반복될 가능성에 제동을 건 것이 바로 이번 회의의 본질이다.
법왜곡죄 역시 사법 전문성의 위기를 예고한다. 판사의 사실관계·법률적용 판단을 ‘법 왜곡’이라는 애매한 잣대로 심판한다면, 실질적으로 정치권력·시민사회로부터 끝없는 견제에 놓이게 된다. 이미 검찰 기소권·변호사 이익·언론 비판이라는 복합적 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판사들이 작정하고 형사적 책임까지 염두에 두고 재판해야 한다면 그 결과가 무엇인지 자명하다. 상고심까지 치열한 쟁송이 이어지는 대한민국 사법현실에서, 법적 혼란만 가중될 것이며 재판 독립성은 실질적으로 붕괴된다.
국제사회의 사례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 주요 민주국가 중에서 중대범죄 전담재판부를 법률로 의무화하거나, 판사 직무상 법해석을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유럽은 사법행정권과 재판권 완전분리, ‘합의체 재판’과 상고제도 강화가 보편적이다. 사법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본질적으로 법관 인사를 길들이려는 일본식 사법관료제 도입도 시도됐지만, 오히려 권력 개입 논란만 거세졌다. 미국 연방판사 임기제, 대법관 공개청문 등 ‘공적 책임성’ 강화를 추구하지만, 판사 법적 해석을 범죄시하지는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촛불시민 혁명’ 재판 결과 등 특정 판결에 대한 불만이 반복적으로 표출되며, 전직 대통령 내란죄 판단, 민주화운동 내 무죄 선고 등의 사법 판정이 정치갈등의 불씨가 되었다는 배경도 있다. 다만, 정권이 입맛에 따라 사법구조 조작에 나서는 순간, 사법부 무력화는 물론 국민 신뢰 자체가 붕괴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패착도 망각해선 안 된다.
이번 사안을 두고 법조계 내부뿐 아니라 학계·언론도 비슷한 비판을 내놓고 있다. 전국공무원법원노조, 전국법관노조 등 조직들은 즉각 성명을 내 재판 독립 훼손 위험성을 경고했다.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고려대 등 법학교수단, 헌법학자들은 ‘법원 인사권 독립’과 ‘법 적용 다양성’ 자체에 정면 위배된다고 지적한다.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같은 주요 보수 언론도 ‘의회 권력의 사법 길들이기’, ‘개헌 수준의 사법질서 훼손’이라는 강한 논조를 유지 중이다. 한겨레·경향 등 진보 언론도, 실제로는 권력 분립 원칙에 혼선을 초래한다는 우려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정치권의 무리한 입법 밀어붙이기는 국민 기본권 보호보다 정치적 알리바이 확보에 더 방점이 찍혀 있는 모양새다. 윤석열 정부 역시 청와대와 법무부를 통해 사실상 우회적인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사법개혁 프레임’ 대 ‘재판 독립 수호’라는 정치적 대립 축이 한층 명확해졌다. 국회 여야 지도부 간협상 과정에서도 법관추천권, 재판부 구성방식, 적용 범위 등 세부 쟁점의 실질적 공감대는 거의 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중이다.
문제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근간인 사법권 독립이다. 내란 전담재판부와 법왜곡죄 신설의 명분에는 일말의 타당성이 없다. 법관 개인의 판결을 위법으로 낙인찍는 순간, 국민 권리 보호의 최후보루가 무너진다. 정치의 사법 침탈은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 현 정부 및 국회는 사법 오남용과 권한 남용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견제와 균형, 헌정질서의 원칙이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방어선임을 분명히 상기할 때다.
— 윤태현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