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봉의 마지막 무대,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

바로 오늘, 서울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7호실에서는 깊고 조용한 이별이 치러졌다. 약 60여 년을 넘게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살아온 배우 윤일봉. 그의 발인이 12월 10일 새벽 엄수됐다. 가족은 물론 국내 영화계, 연예계 인사들, 그리고 조문객들의 눈물 속에서, 이 시대 원로배우의 별이 조용히 졌다. 1936년생인 故 윤일봉은 오랜 투병 끝에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그의 삶은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빛났고, 이날도 그의 곁에는 딸 윤혜진과 사위 엄태웅이 마지막 배웅을 지켰다. 고인의 삶을 기리기 위한 조문 행렬은 추모와 감사의 무언의 마음이 교차하던 시간이었다.

사람은 살아갈 때 더 오래 사랑받기 위해 예술이란 숲길을 선택한다. 윤일봉이라는 이름은 그 숲길의 오래된 나무처럼 많은 이들에게 그늘을 드리웠고, 때로는 시원한 바람, 때로는 깊은 그리움이 되어 주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윤일봉은 영화 ‘춘향전’의 이몽룡, ‘객주’, ‘불새’, KBS 대하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등 수많은 인물로 분해 이야기를 남기며, 대중과 함께 시간의 강을 건넜다. 그가 무대 위에서 빚어낸 섬세한 감정선과 단단한 인간미는, 이 시대 연기자의 표본이자 영화사의 한 페이지였다.

이번 이별은 단순한 인물의 퇴장이 아니다. 윤일봉이라는 배우—혹은 아버지, 남편, 스승, 동료, 조연, 주연—그가 남긴 궤적에는 한국 영화·연예산업이 품고 있는 따스함과 단단함이 스며 있다. 영화사적 의미도 남다르다. ‘하이틴 스타’라는 말이 생소하던 시대, 그는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시대는 변하고 트렌드는 변색되어도 사람의 온기는 결코 퇴색되지 않는다는 것. 수십 년을 통과한 윤일봉의 필모그래피는 한 세대의 기억, 그리고 수백 만 관객 개인의 추억이 되었다. 그의 죽음을 조명한 뉴스1 외에도, 다양한 언론이 지난 이틀간 그의 일생과 가족사, 마지막 시간, 장례 현장까지 세심히 보도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영화진흥위원회, 각 방송사의 추모 리포트에도 하나같이 담겨있는 것은 ‘존경’과 ‘그리움’이었다.

딸 윤혜진과 사위 엄태웅, 그리고 가족들의 애틋한 표정은 ‘연예계 가족’이라는 특별한 이유를 넘어, 누군가를 애도하는 인간 본연의 마음이 어떠한 지를 전한다. 죽음은 지독히도 평등하고, 사랑과 기억만이 남는다. 장례식장에 걸린 하얀 국화, 울먹임 사이로 건네지는 조문객들의 속삭임, 윤일봉을 기억하는 동료 배우의 뒷모습. 마치 한 편의 흑백영화처럼, 우리의 문화계는 또 한 명의 거장을 이별로 보내며 침묵했다.

이별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책임감. 윤일봉은 생전에 늘 장인정신을 강조했고, 후배들에게는 스스로의 길을 묵묵히 걸으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번 장례는 그 뜻을 오롯이 이어받는 계기가 될 터. 장인의 발자국이 곧 우리 예술계의 등대임을 기억하며, 지금 이 순간도 또 다른 윤일봉의 씨앗들이 조용히 자라고 있다. 그는 ‘배우’이면서 ‘사회’였다.

트렌디함과 감성의 시대, 우리는 자극적 스캔들보다 삶을 통째로 살아낸 예술인을 추모할 때 더 많이 울고 웃는다. 오늘 새벽의 발인은 한국 문화계의 겹겹이 차오른 그리움 위에, 또렷이 각인될 것이다. 영면을 기원하며, 고요히 남은 이들을 어루만지는 겨울 아침이었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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