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김지미, 한국 영화 황금시대의 별이 지다

서울의 싸늘한 겨울 공기, 2025년 12월의 도시는 어딘가 어색하게 조용했다. 영문을 모르는 보행자들의 흐름 위로 영화관가의 오래된 영사기 소리처럼 낡고도 선명한 슬픔이 스친다.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이 단어만큼 강렬한 수식이 또 있었을까. 배우 김지미. 그가 세상을 떴다. 미국에서의 긴 병치레와 마지막까지 조용했던 입소문, 영화계 선배들은 아직 빈소도 채 마련하지 못한 채 부고를 알렸다.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한 시대의 막이 이렇게 내려가고 있었다.

주황빛 카펫 위, 플래시가 번쩍대던 1960년대의 충무로. 한 남루한 시네마 건물 앞, 교복 자락을 흔들며 들어서는 소녀. 1957년 ‘황혼열차’로 데뷔한 고등학생 김지미는 그렇게 스크린에 올라 탔다. 수십년이 흘러, 약 700편의 작품을 남긴 한 배우의 연보는 그 자체로 한국 영화사의 파노라마다. 김지미, 또는 본명 김명자.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수사는 단순한 외모 찬사가 아니라, 영화인의 기백과 도전, 그리고 당대의 문화적 격랑을 뚫고 지나온 질주에 대한 경의였다.

당시의 영화판은 지금과 달리, 배우 한 명의 얼굴에 영화사의 명운이 달리던 시대였다. 김지미의 얼굴 아래, 충무로는 온갖 ‘흥분’과 ‘소란’이 뒤섞였다. 김수용 감독의 ‘토지’(1974),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5), 그 무수한 대작들의 현장.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대종상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던 모습 위로, 시대의 스타를 향한 대중의 갈채는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1970년대를 뜨겁게 달군 김지미의 명성과 신비, 그리고 사생활을 둘러싼 언론과 대중의 엇갈린 시선은 시대적 초상처럼 자리한다. 이른바 “신파”라 불리던 감정의 낭만적 과장이 극장 안팎에서 파도치던 시절. 흑백 셀룰로이드 필름 위, 김지미가 연기한 여성 캐릭터들의 어깨에는 당대 대중의 욕망과 한계, 그리고 못다한 해방의 무게가 묵직했다. 그녀의 미모에 국한하기에는 20세기 한국 문화와 영화산업이 그녀의 손끝에서 새로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상 기자의 시점으로 바라본 김지미의 연기는 한 컷, 한 컷에서 현장의 박진감과 전율, 그리고 그 이면의 쓸쓸함을 동시에 담아냈다. 현장에서 김지미는 결코 ‘화려한 스타’에 머물지 않았다. 1980년대의 분주하고 고루한 촬영장, 수많은 스태프와 후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촬영장 구석에서 막내 연기자의 손을 잡아 일으키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카메라가 흔들릴 때마다, 그녀의 긴 호흡과 담담한 눈빛이 현장을 안정시켰다. 연기와 인생, 그리고 산업적 모험의 삼각점 위에 김지미란 이름은 언제나 생생했다.

지미필름을 설립하고 영화진흥위원회 위원까지 지낸 기록은 한 명의 배우가 제작자, 정책입안자의 길 위에서도 기꺼이 자기 몫을 해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수천억 원의 자본이 오가는 오늘의 충무로에서, 김지미의 ‘손발로 뛰는 열정’은 어쩌면 더는 복제될 수 없는 현장의 기억이다. 단순히 카메라 앞의 얼굴, 스타 시스템에 내리꽂힌 빛이 아니라, 촬영 현장 곳곳에 잔류하던 땀방울과 무수한 언쟁, 웃음과 눈물의 클로즈업이 바로 그였다.

영화산업 경력이 70년 가까이 되는 배우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 직접 제작사(지미필름)를 설립한 사례는 아직도 드물다. 1973년 배우 신성일과의 결혼, 그리고 공개적인 이혼까지, 김지미는 세간의 시선과 구설도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했다. 그것이 곧 ‘여성 배우’의 삶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연기자, 제작자, 영화정책위원 등 여러 얼굴을 오가며, 김지미는 한국 영화계의 여성 지형을 확장한 1세대였다.

2025년을 살아가는 오늘의 시점에서, 충무로의 후배들은 그가 남긴 ‘현장’의 유산을 돌아본다. 속도감 있게 변화하는 영화산업, 고도로 디지털화된 제작현장, 대중 취향의 빠른 변곡점 속에서도 김지미의 장면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예기치 못한 사고와 장벽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걸었던 그의 발걸음,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현장을 다듬어온 내공. 최신 기술과 새로운 스타들이 차고 넘치는 이 시기에야말로, ‘오래된 별’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묻는 소리가 크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병실, 삶의 막바지까지 스포트라이트가 아닌 조용한 투병을 이어간 김지미. 그의 마지막 행보마저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록됐다. 한국영화인협회는 영화인장으로 그를 기린다고 밝혔지만, 현장을 누볐던 그의 실제 빈자리는 충무로 골목골목에서 더 선명히 느껴진다. 마지막 촬영이 끝난 스튜디오처럼, 불 꺼진 조명 아래 누군가 소리치던 기억이 아득하다. 그리고, 관객과 시대를 위해 자신을 내던진 85년의 세월. 한 시대의 막, 그 뒤편에서 여전히 누군가 김지미의 이름을, 연기의 현장을, 잊지 않는다.

백하린 ([email protected])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김지미, 한국 영화 황금시대의 별이 지다”에 대한 8개의 생각

  • 와 85세까지… 진짜 오래 버텼다. 요즘 배우들은 저 정도 스토리 절대 못써ㅋ 아쉬움만 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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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진짜 한국영화의 전설급 산증인마저 다 떠나는구나… 시대가 바뀐단 건 이런거지. 명복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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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 다시는 영화계에 이런 전설 안 나오겠죠. 가끔 뒤돌아보면 그때 그 현장, 그 숨결이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최선을 다한 인생, 존경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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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말 대단한 분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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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헐… 이젠 영상으로만 봐야 하는 거냐!! 진짜 시절이여… 고인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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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의 한 획을 그은 배우의 별세 소식이 참 아쉽습니다. 영화 제작, 연기 모두에서 깊은 족적을 남긴 분이기에 후대 영화인들도 반드시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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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 700편?? 저 숫자는 진짜 인간계 아님… 김지미쌤 아닌듯 현실감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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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오래 기억될 이름이네요. 요즘도 촬영현장 보면 바빠도 허전하던데 김지미 선생님만한 존재감, 진짜 보기 힘들겠죠. 영화 역사가 이런분들 덕분에 안 멈춘다는 거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평안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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