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문학상 수상은 작가의 종착역이 아니라 ‘간이역’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언제부턴가 ‘문학상 시즌’이 되어버렸다. 따뜻한 책갈피 사이로 한 작가의 이름이, 또 다른 신인의 이름이 번져간다. 문학상 트로피를 들고 선 그의 눈동자엔 빛이 어린다. 하지만 그 환희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문학상, 과연 그게 전부일까.
작가의 여정은 마치 기차를 타고 무수한 역을 지나치는 여정과 닮았다. 수상 소식을 접할 때마다 들리는, “이제 성공했다”는 소리. 하지만 문학상은 종점이 아니라 이름 모를 ‘간이역’에 불과하다고 기사 제목은 말한다. 간이역—잠시 숨을 고르며 작은 역에 서 있되, 그 앞에는 다시 이어지는 궤도가 있다. 이 은유는 수많은 신진 작가부터 중견 작가까지, 문학의 길 위에 선 이들이 품는 외로움과 기대, 그리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긴장감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2025년, 여러 권위 있는 문학상의 수상작들이 각광을 받았다. 각 출판사와 평론가들은 더없이 화려한 찬사를 쏟아낸다. 새로이 탄생한 이름에는 ‘문단의 별’, ‘세대의 목소리’ 같은 수식어가 덧씌워진다. 수상 이후 작가는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하지만 그 빛 뒤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같은 기억이 반복되어 왔다. 문학상이라는 이정표는 재능 있는 이들에게 비단길을 열어주기도 하지만, 거대한 ‘기대’라는 무게를 함께 얹어준다. 작가란 호칭이 무르익기도 전에, ‘다음 책엔 반드시…’라는 압박이 시작된다.
수상 순간의 감격 뒤에는 고요한 밤이 찾아온다. 신인상이든 대형 문학상이든 받는 이의 손엔 늘 공허함이 선물처럼 남는다. 2025년 한 해 만 해도 30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문학상이 탄생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묻는다. 이 상이, 진짜 내 글을 읽은 이 많아진 걸까, 아니면 트로피가 또 하나 쌓였을 뿐일까?
인터넷 서점과 북 플랫폼, 각종 SNS를 뜨겁게 달구는 수상작들은 분명 문학계의 활기와 화두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한편으론 문학상 중심의 신인 발굴 구조가 기성 작가들, 혹은 묵묵히 스스로의 길을 가던 이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독자들은 신인의 데뷔 과정에 점점 둔감해지고, 상 없는 작가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투명 인간이 되어간다. 출판 업계의 빠른 흐름, 매체의 조명, 문학이 산업이 된 현실—이 모든 것이 각자에게 간이역이자 숙명이다.
문학상의 역할은 분명하다. 시대와 우리 사회가 발견하지 못한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오고, 낯선 언어와 문체를 책장 위에 놓는다. 때때로 진정성을 의심당하는 상도 있다. 하지만 이 구조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주목할 것은, 수상의 환희와 상징 그 너머에 숨은, 작가 개개인의 고유한 시간과 이야기가 아닐까. 문학상은 작품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지만, 곧 새로이 짓는 길의 입구이자 작가들에겐 각자의 내일을 향한 ‘간이역’이다.
최근 몇 년간 단순한 수상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수상 이후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본 상을 받아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 남들이 기대하는 방향이 아닌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가겠다, 그렇게 다짐하는 이들은 마치 궤도의 숨겨진 지선을 따라 홀로 걷는 여행자 같다. 한편에서는 문학상 수상 자체가 상업적인 변질 혹은 독자의 피로도를 증폭시킨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맞다, 때론 본질을 잃기도 하고, 이름뿐인 트로피가 쌓이고 만다. 그러나 문학의 가장 근원적인 힘, 개인의 서사와 시대의 공명은 어떤 제도나 결과 그 자체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결이다.
이것은 간이역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작가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는 독자 모두를 위한 은유의 시간이다. 곧 열차는 다시 출발한다. 누군가는 또 다른 길로 나아가고, 누군가는 좀 더 오래 잠시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곱씹는다. 간이역은 종착역이 아니듯, 수상 뒤 삶도 결코 정지된 프레임이 아니다.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문장을 향한 작가들의 시선은 여전히 빛난다. 우리 모두 언젠가 작은 역에 머무르듯, 문학 한구석에 흔적을 남긴 누군가의 삶에 조용히 귀 기울일 시간이다.— 정다인 ([email protected])


잔잔한 글톤 좋네요. 무언가 길 위 느낌이랄까. 오늘따라 맘이 묘하게 가라앉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