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겨울, 베스트셀러 순위가 말하는 우리의 독서 트렌드
연말로 접어드는 2025년 12월, 대한민국 서점가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익숙한 작가들과 새로운 이름들이 오묘하게 공존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잠잠해진 뒤 일상이 돌아오면서도, 사회 전반에 걸친 불확실성과 변화의 흐름은 책 선택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번 주 집계된 종합 순위에서는 자기계발서와 에세이, 그리고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 논픽션이 골고루 자리해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1위 자리를 꾸준히 지켜온 자기계발서 저자 김난도의 신간이 다시 한 번 정상에 올랐다. 김난도의 책이 이렇게 꾸준히 사랑 받는 배경에는 한 해의 끝과 새해의 시작을 준비하는 독자 특유의 심리, 자신을 돌아보고 내년을 설계하려는 사회적 욕구가 짙게 드러나 있다. 그의 글은 이미 ‘작심삼일’의 고리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에게 습관 형성과 동기부여의 해법을 제공하면서, 단순한 동기 부여서를 넘어 심리학과 사회학의 경계에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2위부터 5위까지는 ‘힐링’이라는 시대정신이 강하게 배어난다. 특히, 올해 초등학생과 청년층 모두에게 인기를 끈 일러스트 에세이, 그리고 20대 직장인들의 고된 반복 일상을 달래준 ‘마음의 문장들’이 상위권에 포진한다. 지친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짧은 응원, 공감가는 문장들, 그리고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는 디자인까지. ‘공간’, ‘쉼’, ‘관계’에 대한 갈구가 책 표지와 서사의 노출 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그러나 힐링 열풍의 이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이런 트렌드는 한편으로는 현실의 고통을 단기적으로 잠재우려는 도피적 독서 욕구, 혹은 영화 ‘코다’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처럼 마음을 어루만지는 미디어 콘텐츠가 강하게 대중문화 시장을 장악하는 현상과 맥을 같이 한다. 이 때, 드라마틱한 서사가 아닌 ‘조용한 목소리’에 독자들이 더욱 끌리는 것은, 자극에 지친 현대인이 새로운 휴식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경향 때문이다.
눈여겨볼 점은 최근 빠르게 순위권에 진입한 사회 비평서들의 존재감이다. ‘2030 미래보고서’와 같이 기후, AI, 국제정세를 다룬 도서들이 10위권 진입에 성공했다. 팬데믹과 지정학적 변화, 지속적 불황 등 사회적 충격이 누적될수록 사람들이 앞날에 대한 통찰, 또는 불안 해소를 위해 책을 찾는다는 고전적인 독서 메커니즘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방증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국내외 정치·사회적 이슈를 예민하게 짚어내는 젊은 저자군이 많이 부상했다. 그들의 언어에는 기존 기성 세대 저자와 구별되는 솔직함, 투명함, 그리고 과감한 문제 제기가 있으며, 이는 ‘기성 베스트셀러=안정적’이라는 등식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사실 이 흐름은 OTT 오리지널 다큐, 사회 비판 영화의 인기와도 궤적을 같이 한다. 영역은 달라도, 날카로운 분석과 진입장벽 없는 전달력이 독자와 관객을 움직인다.
문학 분야에서는 장르물, 특히 스릴러와 판타지가 여전히 독보적인 강세를 보이나, 이번 주 리스트에서는 국내 작가보다는 최근 번역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그리고 북유럽에서 건너온 미스터리 소설 한두 권만이 10위 내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문학 고유의 섬세하고 정적인 감성보다는, 빠른 전개와 압축적인 스토리텔링을 선호하는 독자의 취향 변화와도 맞물린다. 이 대목에서는 넷플릭스, 디즈니+, 웨이브 등 OTT의 ‘스토리 몰입형’ 콘텐츠 소비 증가와 연결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즉, 책에서도 눈에 띄는 ‘다음’의 욕망, 빠른 해소, 서사 장악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잠한 듯 보이지만 강하게 순환되는 한류 웹툰·웹소설 기반 출판물의 꾸준한 인기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10~20대 독자층에서는 종이책보다는 웹 기반 오리지널 스토리에 열광하며, 그 중 일부 인기작이 오프라인 출간으로 이어지면서 증가세를 보인다. 이는 스크린·피지컬 미디어 경계가 허물어지는 미디어 소비 트렌드, 즉 책 역시 뉴미디어 진화와 연결되어 있음을 명확히 시사한다.
이 시점에서 출판계가 마주한 가장 큰 과제는 결국 ‘독자 경험의 세분화’와 ‘스피드’이다. 한때 모든 연령대가 한 책, 한 이야기로 소통하던 시대는 지나고, 지금은 취향-형식-이야기 구조의 세분화가 극도로 진행된다. 베스트셀러에는 모두의 삶, 모두의 욕망이 고루 담기지 않는다. 디지털 디바이스 덕분에 출판의 속도는 빨라지고, 독자의 ‘피로’도 동시에 높아진다. 돌이켜 보면, 과거에는 한 권의 책이 하나의 세대를 상징하는 문화적 등대 역할을 했지만, 지금의 베스트셀러 차트는 ‘동시간대 다수의 작은 문화권’이 충돌하고 공존하는, 그야말로 상징적인 풍경이다.
작품별로 저자 스타일을 관찰하면 흥미롭다. 김난도의 담백하고 일상어에 기반을 둔 실용적 문장은 자기계발서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면서도, 세밀하게 설계된 이야기 구조, 반복과 변주를 통해 독자 감정의 흐름을 예리하게 분석한다. 일러스트 에세이는 대개 짧은 문장에 은유와 단순함을 배치—핵심 메시지는 버거운 현실에 잠깐 숨쉴 틈을 주는 데 있다. 반면 사회 비평서는 직설적 언어, 통계적 사실, 시의성 있는 사례를 과감하게 배치해 긴박하고 시사적인 감정선을 형성한다. 이러한 다층적 스타일 구사는 2025년 한국 독서시장의 다이내믹, 그리고 빠르게 변하는 문화적 감각의 결과물로 봐야 할 것이다.
2025년의 독자들은 익숙함과 새로움, 위로와 통찰 사이에서 끝없이 책을 고른다.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는 하나의 명확한 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혼란과 피로, 그리고 여전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다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오늘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어떤 이야기에, 어떤 고민에 멈춰섰는지를 되묻는다. 시간의 흐름과 문화, 마음과 현실의 균열 한 가운데, 한 권의 책이 놓여 있다. 이 질서 없는 시대에, 베스트셀러 차트는 여전히 닫힌 것 같지만 동시에 가장 넓게 열려 있는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짧은 책은 좋긴해요👍 가끔은 심플이 최고!
문학 순위에 과학 분야는 왜 없을까요…? 시대 변화라지만 조금 아쉽네요.
공감가는 내용이네요. 순위권에 있는 책들을 보면 시대 변화도 느껴집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요즘 베스트셀러엔 과학서가 너무 적네요! ㅠㅠ🧬 사회적 이슈도 중요하지만, 진짜 미래는 과학책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더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