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죽창’—갑오왜란 재해석, 시대의 정서와 화해하는 한국 역사소설의 힘

이계홍 작가의 장편 역사소설 ‘죽창’ 13장(296회) ‘갑오왜란’ 편은 조선 말기 복잡한 권력구도와 민중의 분노, 친일·친청 내정 간의 갈등, 그리고 이 시기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갑오왜란, 곧 동학농민운동 직후 청과 일본의 무력충돌을 축으로 펼쳐지는 이 장은, 한국 근대 형성기의 핵심 분수령을 인물 중심의 촘촘한 배경 서술로 풀어낸다.

이계홍은 문장의 각 단락마다 시대적 정황을 역사자료 이상의 체감으로 다가오게 한다. 박히듯 서술되는 권력자, 농민, 관원, 병졸 등 다양한 삶의 현장은 단순한 권선징악을 넘어 혼란과 불확실함, 시대적 혼돈을 저마다의 감정과 관점으로 응시한다. 최근 유관 신간과 언론의 담론처럼, 갑오왜란을 보는 시선이 ‘구국’·’반외세’ 같은 단선적 구호를 벗어나 실제 군상들의 삶과 현실적 선택, 그리고 그 틈에서 비롯된 딜레마와 갈등을 부각시키려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작가는 이 외피 속에 과장 없는 인간들의 내면을 오래 들여다보는 진득한 시선과, 중도적 균형감각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흔들림 없이 보여준다.

옆자리를 함께했던 다수 민중들이 겪었던 공포, 허탈, 그리고 체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동학농민운동 이후에 벌어진 권력의 재편성과 열강의 내정 간섭 상황은 오늘의 관점에서도 공명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민중의 억압, 군벌의 잔혹, 외세 개입의 고통스러운 일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주친 배반과 양보, 투쟁과 타협을 거듭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은 단순한 사건 나열을 넘어 그 시기 삶의 ‘결’과도 같은 정서를 좇는다. 사회·역사 서적의 각주나 만연체의 직진적 서술에 비해, 작가의 인물 중심, 배경 설명 강화 접근은 동시대적 의미를 되묻는 데 탁월하다.

한국 근대사를 다루는 서사는 대개 영웅, 혹은 순교자적 민중을 앞세우거나 악역을 단일화하는 방식에 머무르기 쉽다. 하지만 ‘죽창’의 이번 연재분, 특히 ‘갑오왜란’ 장에서는 선과 악, 진영 나누기를 경계하면서 전체적인 맥락에 내재한 인간 군상의 복잡성을 조용하게 들추어낸다. 이는 2025년 오늘날, 사회갈등의 원인이 이념이나 진영을 넘어서 구체적 삶의 선택과 그 내면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문제 제기와도 닿는다.

타 매체 기사에서는 동기간 발표된 동학농민전쟁, 갑오농민혁명 관련 다큐멘터리와 논픽션, 또는 시사 프로그램들도 빠르게 반성과 새로운 시각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다수는 사건의 외연, 즉 일본과 청, 조선의 군사·정치적 교착에 집중할 뿐, 이계홍 작품처럼 민중의 삶의 결, 그리고 작은 역사 속의 개인과 집단의 구체적 고뇌를 세밀히 잡아내지는 못한다. 실제로 최근 출간된 『검은 꽃』, 『나무를 심는 사람들』 등 동시대 역사 서사와 비교할 때, ‘죽창’이 지닌 장치는 구체성과 서사적 체력에 있다.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해석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 하는가에 더 천착하는 것이다.

1930~40년대 식민지 문학이 그랬던 것처럼, 이 소설은 권력이나 나라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맞서거나, 때론 그 흐름에 속절없이 끌려가는 수동적 존재로서의 평범한 사람들의 ‘사건’을 집요하게 쫓는다. 각 인물의 내면 묘사와 서사의 결은, 기자 본인이 수년간 사회·문화 현장을 취재하며 마주했던 보통 시민, 사회적 주변부에 선 이들의 목소리에서 느꼈던 진정성과 공명한다.

작가의 최근 인터뷰와 자료에 따르면, 갑오왜란은 ‘국가 간 충돌’로 평면화 되었던 시기를 재구성해, 그 안에 울고 웃었던 다양한 계층이 겪은 일종의 내적 전쟁이자, 민중이 권력과 외세, 내분 사이에서 어떠한 고민을 품고 살아남으려 했는지 새로이 조명하고자 했다. 그 노력이 곳곳에서 읽힌다. ‘죽창’에 귀속된 이름 없는 민중의 역사가 왜 2025년에도 강한 호소력을 띠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사회적 관점에서 이 작품은 결국 오래된 질문, 즉 ‘진짜 살아남은 자는 누구인가?’와 ‘기념비적인 역사가 아닌 잊힌 이름, 작은 목소리는 어디로 갔는가?’라는 물음에 조용히 귀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죽창’이다. 역사적 표상으로, 또 당대인의 생활 용구이자 민란의 상징인 죽창은 여기서 평범한 사람들의 저항, 집단적 트라우마, 그리고 시스템에 대한 무기력함과 희망의 이중성을 모두 떠안는다.

한국사 대중화 경향, 그리고 역사소설 소비 증대 현상과 맞물려, 이 작품이 지니는 시대적 가치 또한 커지고 있다. 최근 출간 통계를 보면 20~40대 독자층의 역사소설 구독이 크게 늘고 있으며, 온라인 서점 집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사회와 인간의 연결고리를 배경 설명을 통해 풀어내는 이계홍의 문체는 중도 진보적 시선과 잘 맞는다. 극단을 경계하고 마음 깊이 접어든 감정선을 붙잡아내는 방식은, 인간과 사회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는 데서 사실적 힘을 발휘한다.

우리 사회에서 ‘죽창’을 다시 보는 질문은 곧 130년 전, 혹은 지금도 다르지 않은 선택의 연속—개인의, 집단의, 더 나아가 국가의 선택에 대한 끝없는 성찰로 회귀한다. 각자 다른 자리에서 눈을 뜨고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가 한국 근현대사, 그리고 오늘과 내일을 연결한다. 소설 ‘죽창’의 장면들은 그 연결의 실마리를 2025년 오늘 우리 앞에 다시 놓아준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이계홍의 ‘죽창’—갑오왜란 재해석, 시대의 정서와 화해하는 한국 역사소설의 힘”에 대한 3개의 생각

  • rabbit_American

    ㅋㅋ 그러니까 역사는 교과서로 못배움… 이런 소설이 돼야 느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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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오왜란이 민중 입장에선 또 다른 고통이었지. 한 번 읽어봐야겠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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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소설 읽고 있으면 저절로 우리 사회 돌아보게 됨🤔 진짜 죽창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살아남나 고민하게 됨😮‍💨 작가 대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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