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리의 마음: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따라 걷다
눈길을 덮은 겨울의 이른 황혼처럼,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품은 가시리 풍경은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한강은 이번 소설에서 제주 4·3의 흔적을 기념비나 기록이 아닌 실재하는 공간, 살아 있는 삶의 무늬로 호출했다. 그리고 나는 먼 바람 소리 속에 응축된 슬픔을 따라, 그 가시리로 향했다. 가시리는 제주 안에서도 한참을 더 달려야 닿는 곳. 해녀 호흡 소리, 바람에 쓸려간 말, 붉은 동백과 드문드문 놓인 돌담들이 담고 있는 것은 또렷한 현재라기보다, 깊은 아픔과 기억의 쓸쓸함. 독자 수만 명의 마음이 제주로, 한 편의 소설로 향한 이유는 결국 이 장소가 시대와 인간, 그리움과 침묵의 은유가 되어 서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제주를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아픔이 눌러앉은 땅으로 증언한다. 소설의 인물들이 남긴 목소리,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부드럽고 깊은 한숨. 『작별하지 않는다』는 누군가에겐 역사의 그림자로만 남았던 제주 4·3을, 아주 가까운 지금의 이야기로 세운다. 실제로 이 지역에는 아직도 마을을 잃고, 가족을 잃은 채 남은 이들이 많다. 가시리, 그 지명만으로도 수많은 실향과 마주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슬픔은 한강만의 문장―이따금은 파도 위를 걷듯,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내리누르는 단어들—을 통해 더욱 밀도 있게 전해진다.
나는 가시리의 골목을 따라 걸으며 한강의 시선을 뒤따랐다. 제주 4·3의 참혹함, 그리고 그로 인한 수많은 이별의 흔적. 이 땅엔 아직 이름 붙여지지 못한 무명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강은 소설을 통해 네모난 기념비보다 더 오래 남을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어떤 이들과 이별했는가. 그리고 진정 이별의 끝은 존재하는가?’ 가시리는 그 질문이 허공에 잠기지 않도록, 서성이는 영혼들을 자신의 땅에 꼭 껴안는다. 여기에서 태어난 이야기들은 소설이 아니어도, 계절마다 되살아나는 역사의 씨앗이 된다.
독자의 마음은 왜 자꾸만 한강의 소설로, 제주로 이끄는 것일까. 우리는 여전히 ‘작별하지 못한’ 삶을 살기 때문 아닐까. 한강은 단순한 추모조차 사치가 된 현실을, 그 사치조차 허락하지 않는 정황을 가시리에 투사한다. 이 작은 마을에도 벗어나지 못한 리듬—번민과 그리움, 사랑과 적요—이 흐른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내면은 이곳의 겨울 풍경과 어쩌면 닮아 있다. 끝없이 밀려드는 바람, 하지만 공식적인 사과도, 온전한 고백도 없이 남겨진 고요함. 한강은 가시리라는 구체적 공간에서 죽음, 상처, 그리고 복원의 언어를 반복해서 꺼낸다. 때때로 문장들이 구슬처럼 맺혔다가, 따뜻한 눈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한다. 이곳의 동백꽃은, 끝내 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는 말과 겹친다.
현재 제주도는 4·3 사건을 기억하고 알리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공간은 언제나 조용하다. ‘가시리’는 지금도, 잊지 말아야 할 상처를 잔잔히 안고 산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세상에 나온 뒤, 가시리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 어떤 이는 소설 속 한 구절에 이끌려, 어떤 이는 자신의 조상 혹은 뿌리와 맞닿기 위해 천천히 이 길을 밟았다. 이 방문들은 단순한 문학 여행을 넘어, 상처와 애도의 현장에서 우리 모두가 얼마나 긴 세월을 외면하며 살아왔는지를 일깨운다. 그 과정에서 한강의 언어는 다정하고 슬프게 펼쳐진다. “우린 작별하지 않는 거리에서, 서로를 기억하고 또 잊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한강의 문학은 장소와 인간, 역사와 감정이 한데 어우러져 새롭게 재해석되는 흐름의 중심에 있다. 제주, 그중에서도 가시리는 4·3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너머를 꿈꾸려는 생명의 자리로 다시 태어난다. 한강의 시선이 머문 이곳, 눈이 부시게 아픈 현실을 잠시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천천히 그 길을 걷는다. 거친 돌담, 풀잎 위로 맺힌 이슬, 사람의 체온이 조금씩 배어드는 밤. 소설 한 권이, 잠든 마을에 다시 빛을 켜는 이유다.
더 이상의 이별이 없길 바라는 마음, 그럼에도 완전히 떠나지 못하는 이별을 우리는 어떻게 안고 살아갈까. 한강의 소설과 그가 머문 자리를 통해, 독자들은 조금 더 깊이 만져본다. 가시리의 고요함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잊히지 않는 이름, 작별하지 않는 기억들. 이곳에서의 발걸음은 문학이 현실을, 그리고 현실이 문학을 품는 순간을 오롯이 새긴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제주 가면 꼭 들려봐야겠다… 이런곳이 있었네
헉 진짜 감동ㅜ 한강 작품은 볼때마다 숨막힘ㄷㄷ
이런 기사 좀 더 많아졌으면 함!! 문학으로 다가가는 우리 역사가 있어야함 진짜… 가시리의 풍경이 그저 여행코스여서만은 너무 안타깝고, 소설 읽으면서 한 번쯤은 생각해보게 된다!! 한강 작가는 매번 감정선 건드려서 깊이있게 보여주는 듯. 오늘 밤 소설 한 번 더 펼쳐본다!!
문학+역사 여행=자기개발 마스터🤔 여러분 제주 가시리 안 가면 인생 헛건다라는 말 가짜인가요 진짜인가요… 제주 돌담 보고 심쿵할 준비 필수 ㅋㅋ
근데 진짜 역사랑 문학이 이렇게 섞일 때마다 기분이 복잡함🤔 저마다 잃어버린 것, 남겨진 사람들이 더 많기에 작별이란 단어가 왜 이렇게 크게 울리는지… 기사 읽고 괜히 제주 바람소리 들리는 느낌. 저같이 여행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곳 가서 무거운 마음 한 번쯤 꺼내보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함.
이렇게 기사로나마 작가와 장소를 알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가시리… 가보고 싶어졌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