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만화 강세, 역주행하는 소설…책 시장 ‘정서의 흐름’은 어디로 가는가
출판계의 연초는 언제나 ‘베스트셀러’와 함께 시작한다. 2026년의 문턱에 선 지금, 눈에 띄는 키워드는 변함없이 아동 만화의 굳건함, 그리고 김애란의 소설 『안녕이라 그랬어』의 예상을 뛰어넘는 역주행이다. 도서시장의 선두를 지켜온 만화의 독주와, 예민한 현실 인식을 담아낸 소설이 동시에 조명되는 흐름은 그 자체로 책과 독자의 새로운 긴장을 드러낸다.
대형 서점 및 온라인서점 통계를 살펴보면, 상위권은 여전히 아동‧청소년 만화가 압도한다. ‘마법천자문’ ‘좀비고등학교’처럼 오랜 사랑을 받아온 시리즈물들이 중심에 있다. 이는 단순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저가형 콘텐츠라는 측면을 넘어서, 생생한 판타지와 모험이 ‘이야기의 원형’을 갈망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결과다. 네트워크의 세계에서 피로와 소진을 느끼는 어린 세대에겐, 만화적 상상력이 여전히 유효한 현실 도피처임을 책 시장 스코어보드는 말해준다. 2023~2025년간 꾸준한 판매량을 자세히 추적해본 결과, 학습만화와 엔터테인먼트형 만화는 팬덤에 힘입어 안정된 소비 기반을 구축했고, 각 브랜드별 세계관 확장 전략(굿즈, 모바일 게임 등)과의 시너지가 점점 더 강화되는 모습이다. 특히 크로스미디어 전략을 잘 활용한 작품군이 상위권에 안착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 틈을 뚫고 ‘역주행’하는 소설의 귀환 역시 뚜렷하다. 최근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가 2위까지 치고 올라오며, 소설 독서의 복권(復權) 가능성에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운다. 원래 김애란은 세밀한 현실주의와 잔잔하면서도 혼란스러운 일상감, 언뜻 무덤덤한 문체 속 깊이 있는 정서로 평단과 대중 모두를 사로잡았던 작가다. 이번 작품이 다시 반향을 일으키는 배경에는 작년 하반기 ‘실존적 우울’ ‘가족 공동체’ ‘코로나 이후 일상성’과 같은 키워드에 대한 대중적 관심, 그리고 문자 콘텐츠에 대한 재인식 열풍이 자리한다. 실제로 주 독자층 20대 후반~40대 초반에서 공식 집계 이상의 자발적 입소문이 번진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두 장르의 상반된 흐름을 길게 바라보면, 어쩌면 우리 사회의 ‘감정 매핑’에 대한 집단적 요청이 투영되어 있음을 읽어낸다. 만화의 유쾌한 서사와 소설의 우울한 일상성, 그리고 추리와 역사, 에세이를 가로지르는 장르적 다양화는, 피로와 불안을 해소하고자 하는 독자의 자기방어적 선택과 동시에, 미디어 홍수 속 본질적인 이야기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다. 특히 최근 OTT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실 도피 + 현실 직시’ 프레임이, 도서 시장에서의 이러한 소비 패턴과 연결되고 있음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실제로 넷플릭스와 웨이브 등에서 아동·청소년 판타지와 하이틴 드라마, 그리고 심리 스릴러 계열의 드라마와 예능이 교차 흥행하는 모습은, 활자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정서적 안식처’를 찾으려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김애란의 행보에 조금 더 시선을 기울여본다. 『안녕이라 그랬어』는 기존 청년 세대는 물론, 이제는 여유로운 중년 독자층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언어의 숨결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불안과 관계에 대한 우리 내면의 상처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형식상 파격적이지 않지만 그 점이 오히려 코로나 뒤 사회적 소외,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근원적 우울’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위안을 건넨다. 작가 특유의 페이소스와 절제된 아름다움 덕분에 “감정의 층위, 이야기의 밀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내공이 읽힌다.
지난 5년간 출판계 이슈를 살펴보면, 베스트셀러는 보통 사회 이슈, 미디어 변화, 팬덤의 유무와 맞물려 대중 소비 패턴이 바뀌는 식으로 진화했다. ‘90년대 식 소설 붐’이나 ‘2000년대 자기계발서 광풍’처럼 사회 분위기와 맞물린 장르적 유행이 그 예다. 2025~2026 시즌 들어 다시 ‘글의 힘’, ‘인물의 서사’에 절실하게 집중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감지된다. 김애란은 소설 본연의 힘으로, 아동만화는 콘텐츠 소비의 지평에서 각기 독자의 신뢰를 얻고 있는 셈이다.
아동 만화의 아성은 결코 우연한 트렌드가 아니다. 출판 대중화 시대 이후 학습만화와 창작만화 산업이 어떻게 시스템화·상품화되어 왔나를 보면, 콘텐츠 생산 구조의 체계화와 유통, 멀티채널 IP 확장까지 ‘산업적 자원 선순환’이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소설, 특히 한국 중견 작가의 작품이 독자와 새롭게 만나며 반갑게 역주행하는 모습은, 대중이 여전히 ‘마음의 문학’을 필요로 함을 반증한다.
결국 지금의 베스트셀러 구도가 말해주는 건 단순한 취향의 경쟁이 아니다. 오랜 팬덤과 시스템이 지속되는 만화, 그리고 고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소설이 동시에 사랑받는 이 풍경은 ‘정서적 다양성’과 ‘감정의 균형’을 원하는 시대적 욕망의 결과다. 책의 시대가 끝났다고 느낄 때마다, 정작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책을 욕망하고 있다는 것. 이 점은 2026년의 독서시장에서도 변함없을 것이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만화책이 베스트셀러 리스트 다 차지하는 거 좀 씁쓸하네요… 요즘 애들이 활자에 더 이끌리는 건 이해하지만, 그만큼 질 높은 소설이 동시에 주목받는 건 한편으론 반가운 일 같아요~ 김애란 작가의 감정선을 이해하는 독자가 많아지는 건, 어쩌면 우리가 점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신호 아닐까요? 시대가 변화하면서 콘텐츠 소비 패턴도 다변화될 수밖에 없겠지만, 독자의 감정이 어디에 향해 있는지는 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인 듯합니다😊📚
엄마가 내 동생 사달라는 만화책, 이젠 왜 인기 있는지 좀 알 거 같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