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읽는 백남준: 사운드, 경계를 지우다
백남준을 말할 때, 우리는 자동처럼 텔레비전과 비디오아트를 떠올린다. 모니터 수십 대가 불규칙하게 깜박이는 전시장을 상상한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음악’으로 백남준을 다시 읽는다. 그의 음악 세계는 캔버스 없는 그림, 오선지 없는 작곡 같았다. 익숙했던 미디어가 사라지자 백남준의 본질이 더 또렷이 들린다. 비디오가 아닌 음악에서, 백남준은 사운드 그 자체가 된다. 1950~60년대 뉴욕과 독일, 동양과 서양을 오가던 그 시절, 음악은 백남준에게 실험실이었다. 클래식 전통에 파격을 섞고 전자음을 노이즈에 수놓았다. 첼로와 테이프리코더, 라디오 잡음, 사람 목소기까지 한 공간에 끌어다 놓았다. 그 틈에서 백남준은 커튼을 걷어젖히듯, 익숙함의 뒤를 보여줬다. 미디어 아트의 거장 백남준은 음악에서도 규범을 부쉈다. ‘원격제어 콘서트’, ‘무악’, ‘음악 없는 연주’ 등 오늘날 숏폼 영상 같은 급진성. 60년 전 그가 트는 사운드는 지금의 소셜 미디어 스크롤처럼 짧고 산만하다. 하지만 혼돈 뒤에 남는 여운은 의외로 긴 울림이다. 그의 실험정신은 지금 우리가 소비하는 디지털 콘텐츠의 리듬과 닮았다. 이 지점이 핵심. 음악평론가들 사이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백남준 음악가론’이 나왔다. 하지만 대중은 백남준=비디오아트라는 틀을 좀처럼 벗지 못했다. 이번 전시와 음반 발매,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음악가 백남준을 처음으로 제대로 꺼내놓는다. 그의 음악유산을 재생산하는 작업. 국내외 젊은 뮤지션들이 이음새 역할을 맡았다. 한국 현대음악, 전자음악, 사운드 아트 세계에서 백남준은 여전히 살아있는 멘토가 되고 있다. 2026년에도 음악은 점점 더 숏폼화된다. 30초 내외의 짧은 트랙, 바이럴 사운드, ASMR, 노이즈 기반 음원까지 범주가 파편화됐다. 백남준의 사운드 콜라주는 ’21세기형 듣기’의 언어와 닮았다. 이미 그의 실험과 놀이가 지금 SNS, 밈, 디지털 컬처에서 연결고리를 만든다. 시각 없는 음악, 메시지 없는 노이즈. 그런 음악이 진짜 예술이냐는 질문 앞에서 백남준은 흔들림이 없다. “음악은 사건이다.” 오히려 끊임없이 형태를 변주하고 소리와 침묵의 장난을 친다. 재생과 멈춤, 반복과 오류, 잠깐의 방심마저도 작품의 일부다. 이 과격함과 위트, 낯섦이 지금 디지털 아트의 DNA가 된다. 비디오가 아닌 음악에서 만나는 백남준은 또렷하다. 그의 리듬에는 2020년대 숏폼 세대가 사랑하는 변주와 해체정신이 있다. 듣는 순간마다 달라지는 느낌, 이해 불가능한 혼돈과 침묵마저 포용하는 넓이. 백남준 음악 세계가 50년을 건너 우리 귀에 닿을 수 있는 건, 바로 이 ‘재미와 실험’ 덕이다. “음악은 TV 이전에도, TV 이후에도 남는다.” 그의 목소리가 남아있다. 2026년, 우리는 다시금 비디오가 아닌 백남준의 음악에 귀 기울이고 있다.
— 조아람 ([email protected])


비디오 없이 백남준? 그거 마치 치킨에 맥주 없는 느낌😅
실험적인 음악에 도전하는 뮤지션들 늘어나는 건 좋은 일 같아. 백남준 이름값에만 기대지 않고 직접 들려줬으면 하네.
오 신박… 음악과 비디오 둘 다 잡네👏
음악으로도 백남준 쩐다ㅋㅋ 난 이거 좀 궁금했음👏
음악도 패션처럼 유행 따라가는 건가ㅋㅋ 백남준 이름 걸면 다 예술이라 하겠지. 진짜 다르게 느끼는 사람 몇이나 되려나요? 심오한 척 그만…
이 와중에 또 백남준 네임드 소환이라니, 뉴스 참 단골임 ㅋ
오랜만에 음악과 미술의 경계에 대한 이슈가 나오네요!! 백남준의 음악을 통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